박얼서 시인

▲ 박얼서시인
근심 없는 날이 없다. 아이들 교육에서부터, 고학력 청년들의 실업난, 조기퇴직, 생활고, 각종 질병의 괴롭힘까지… 쉼 없이 짊어지고 넘어야 할 우리들 삶의 멍에들이다. 그 짐이 너무 가혹해서인지 자살이 늘고 있다. 하루 평균 43명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다는 통계이다.

이럴 때일수록 더 강한 의지와 신념이 필요할 테다. 거친 세파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마음의 텃밭 그 중심에 올곧은 신앙심 한 그루쯤 심어 가꾸는 것도 든든한 자기 위안이 될 성도 싶다.

종교야말로 양심을 이끄는 철학이라는 점에서 어느 특정 종교에 치우침 없이 다다익선이라는 소신을 아직도 굽히지 않고 있다. 사랑과 진실… 이런 진리를 논함에 있어 다양성을 크게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런데 요즘 들어 종교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무너져가는 현실이다.

지치고 힘든 세상을 위로하고 치유해줘야 할 일부 종교계가 외려 세상에 걱정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엔, 한기총 회장을 지낸 길자연(서울왕성교회) 원로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자신의 자리를 대물림하였다고 하여 한동안 장안이 크게 술렁인 적이 있었다. 그 일에 앞서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는 개신교 최초로 교회세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자정의 노력을 보여줌으로써 신선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또 어인 일인가? 이용규(성남성결교회) 목사도 마찬가지로 한기총 회장을 지낸 원로목사라는 지도층 신분이다. 이분 또한 자신의 아들에게 담임목사자리를 대물림할 거라는 기사가 눈에 크게 거슬린다.

이 원로목사의 주장은, 당회와 청빙위, 사무총회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쳤기에 결코 세습이 아니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이것 참! 이래도 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라 했다. 즉 참외밭에선 신발을 함부로 고쳐 신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굳이 목사라는 도덕성을 차치하고라도 의심받을 만한 일은 스스로 삼가고 피해야 하는 게 세상의 상식이고 정도일 테다. 더군다나 책임 있는 신분으로서 더 큰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이지 않은가!

오늘날 세습이라니? 이건 뭔가 크게 잘못된 느낌이다. 신성한 종교적 양심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회적 통념만으로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성직이라는 신분을 다시 한 번 겸허한 바탕에서 숙고해볼 일이다. 성직자라면 섬김과 봉사라는 본연의 직분에 충실할 때 존경과 신비로까지 비춰지는 법이다.

목사란 빛과 소금의 직분일 테다. 더구나 한기총 회장을 역임한 원로목사로서 더 큰 종교인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요즘 들어 우리 사회의 도덕과 양심이 크게 위협 받고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진다. 그 병고의 정도가 위험수위를 훌쩍 넘기고도 자각증상마저 깨닫지 못하는 형국처럼 느껴오는 것이다. 회생불능의 중병만은 피해야 할 텐데, 심히 걱정이 앞설 따름이다.

그동안 우린 겉보기식 물질적 풍요에만 지나치게 치중해온 셈이다. 그런 과정에서 수단이 목적을 마구 짓밟고, 합목적성보다는 성공 가능성만을 더 중시하였으며, 공익 보다는 사익의 추구에 최선을 기울였다. 정신적 뿌리라 할 수 있는 더 큰 것을 잃으면서도 그에 따른 손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 청맹과니였던 것이다.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영혼의 병고가 더 무서운 법이다. 이젠 그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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