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화문을 들어서 우측에서 바라본 옥천교 전경으로, 궁궐 다리의 격식을 갖춘 난간이 멋스럽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명정문 앞에 자리… 宮 다리론 유일한 ‘보물’
무지개형 홍예 2개 이어 안정감·美 자아내
전란으로 홍예돌 탈락… 2005년 해체보수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창덕궁 동쪽에 자리 잡고 있어 ‘동궐(東闕)’이라고도 불린 ‘창경궁’에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돌다리이자 궁궐 내 다리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돌다리 하나가 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아치형의 ‘옥천교(玉川橋)’다.

눈이 제법 내리는 날, 인적이 뜸한 시간을 내어 창경궁 옥천교를 찾았다. 눈이 덮인 궁궐은 더욱 멋스런 풍경을 연출했다.

◆궁궐 다리에 맞는 격식 제대로 갖춰

궁궐의 정전(正殿)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정전의 정문과 궁궐 대문 사이를 흐르게 한 금천을 건너야 했다. ‘옥천교’가 바로 창경궁 명정전을 들어서기 위해 설치한 돌다리다. 다리는 대궐에서 흘러나오는 개천 하수구인 어구(御溝) 위에 세워졌다.

다리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 2개를 이어 붙여 안정감과 더불어 뛰어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또 두 개의 아치를 틀고 그 위에 장대석(長臺石, 길게 잘 다듬어 만든 돌)으로 귀틀을 짜고, 장대석과 판석(板石)을 끼워 넣어 바닥을 만들었으며, 양옆에 아름다운 돌난간을 세워 궁궐의 다리에 맞는 격식을 갖췄다.

옥천교 다리 위(길이 9.9m)는 중간 부분이 무지개처럼 약간 둥그스름하며 높다. 또 다리의 너비(6.6m)는 널찍하게 뒀다. 이는 왕이 이동할 때 좌우를 옹위하는 의장대 행렬까지 고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옥천교의 양 끝에 있는 석수(石獸)는 돌로 둥글게 깎아 세웠다. 창경궁의 석수는 창덕궁의 금천교(錦川橋)나 경복궁의 영제교(永濟橋)와 같은 양식을 보인다. 옥천교 양 끝의 돌짐승 석수는 현재 머리 부분이 깨어져 없음을 확인했다.

홍예 두 개가 이어지는 난간 아래의 역삼각형 공간에는 억센 표정을 한 도깨비(나티) 얼굴을 돌에 새겨놓았다. 다리의 양옆에 똑같이 새겼는데, 이 다리를 오가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 홍화문을 들어서 우측에서 바라본 옥천교의 홍예(왼쪽)와 오랜 세월이 흘러 머리 부분이 깨진 석상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창경궁 옥천교 ‘궁궐지’서 위치 확인

‘궁궐지’는 조선시대 궁궐의 각 전각의 명칭·위치·연혁 등을 기록한 책이다. 이 궁궐지에 따르면 창경궁은 창덕궁의 동쪽에 있으며, 두 궁궐은 성종 14년에 옛 수강궁 터에 지었다. 또 창경궁은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지었으며, 서거정이 각 건물의 이름을 지었는데 전(殿)으로는 명정전, 문정전, 수녕전, 환경전, 경춘전, 인양전, 통명전이 있고, 당(堂)으로는 양호당, 여휘당이 있다. 각(閣)으로는 사성각이 있으며, 정(亭)으로는 환취정이 있다. 그리고 임진병화로 불탄 것을 광해군 8년에 중수, 궁 동쪽에는 홍화문이 있고, 홍화문 안쪽 어구의 다리를 옥천교라고 부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 기록은 옥천교의 위치를 설명하고 있을 뿐 다리의 정확한 초창년대에 대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진왜란·전란·일제강점기 겪으며 해체보수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광해군 때 재건됐으며, 고종 5년(1868)에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왕실을 대표하는 궁궐이었다. 당시 동쪽의 두 궁궐을 ‘동궐’로 묶어 부르기도 했다. 이후 인조 때와 순조 때 이괄의 난 등으로 큰 화재가 발생해 통명전, 경춘전, 환경전 등의 내전 대부분이 소실됐다.

순종 3년(1909)에는 일제가 강제로 궁 안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일반인들에게 관람시켰으며, 춘당대 앞에 연못을 파 춘당지라고 했다. 1911년에는 자경전 지역에 박물관을 건립하고 창경원이라는 이름으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이때 60여 채의 전각, 궁장, 궁문 등이 철거 변형됐으며, 1912년에 일제는 창경궁과 종묘가 연결되는 산맥을 끊어 도로를 개설했다.

옥천교는 해방 후 1963년 1월 21일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386호로 지정됐다. 이후 1981년에 창경궁 복원계획을 수립, 1983년에 창경원으로 격하된 명칭을 창경궁으로 고치고, 궁내 동물사를 모두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벚나무도 제거했다.

1986년에 ‘동궐도’ ‘궁궐지’ ‘창경궁영건도감의궤’ 등의 고증자료를 참고해 없어졌던 일부 건물을 복원했으며, 옥천교는 2004년 3월부터 3개월간 정밀실측조사를 실시해 홍예돌 탈락과 풍화가 심화되는 등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확인하고 2005년에 해체보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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