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인터뷰

유기적으로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있는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극단적인 사고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뤄낼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래서 상생과 화합이 절대적인 화두가 되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계층과 분야를 뛰어넘어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논의와 운동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제주체들의 상생을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을 만났다.

▲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뉴스천지

-지난 4월 출판된 ‘상생의 경제학’이 올해 문화관광부 선정 우수 사회과학 학술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왜 ‘상생의 경제학’을 연구하게 됐는가.

‘상생의 경제학’을 보고 혹자는 ‘상상의 경제학’이 아니냐고 물었다. 승자와 패자가 분명한데 어떻게 상생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적어도 경쟁으로 인한 효용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상생이란 선도계층이 취약계층에게 무조건적인 시혜를 베풀어서 기계적인 평균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 자본, 정규직 등 선도부문과 중소기업, 노동, 비정규직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부분 사이에서 상호의존적으로 성장이 증진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층 간의 성장격차는 확대돼 왔다. 중위계층의 성장 기울기는 갈수록 가파른데 하위계층의 기울기는 갈수록 아래로 꺾여 무한대의 차이를 내고 있다.

이같이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세계적으로도 불균형이 심화되면 그 시스템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따라서 서로의 발전을 견인·추동하는 방법에 주목하게 됐다.

-양극화 극복방안으로 제시한 ‘제도의 재정렬’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를 구체화한 18가지 과제는 얼마나 현실화됐는가.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도록 하는 제도적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주목했을 때 결국 외환위기 이후 기존의 제도와 변화된 제도와의 상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에 이식된 제도들의 질서 없는 결합은 발전에 기여하기보다 굴절되도록 만들어 상호보완적 관계가 형성될 수 없는 체제가 됐다. 이 같은 제도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해 ‘제도의 재정렬’이 시급하다고 생각했고 경로의존성, 상호보완성, 환경적응성을 기준으로 기존의 제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제도와 조화롭게 결합하여 환경변화에도 상응하는 제도의 진화를 꾀했다.

‘상생의 경제학’ 집필진은 제도 경제학의 공리에 입각해 제도가 바뀔 때 행태의 선순환을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센티브를 통해 바뀐 경제제도를 체질화, 내면화할 수 있다고 본다.

기업 간의 상생을 위해 제시했던 18가지 과제가 다 현실화된 것은 아니지만 대기업 출자총액규제 폐지나 근로장려세제 확대 등 일부는 시행되고 있다. 또 제도의 혁신은 법률적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행태나 의식이 동반되는 비공식적인 부분까지도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인 제도의 혁신만 제안한 것은 아니다. 중·장기적인 제안도 포함돼 있다.

- ‘상생’이 갖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실제 시장경제에 어필되는 부분이 적은 것 같다.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경제주체들이 단기적인 이익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집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터널비유 같이 터널 밖 낯선 상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좌우를 보지 못한다. 협력했을 때의 대가와 협력하지 않았을 때의 대가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협력하지 않았을 때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것이 갖는 문제는 우리가 반 사실적인 가정을 잘 해보지 않아서 그렇다. 계속해서 단기적인 이익을 선택함으로 악순환이 이어질 때, 자신이 가질 효용의 크기와 사회 전체의 효용의 크기를 비교해보면 협조적인 행동을 했을 때에 자신에게 돌아가는 효용 크기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터널비유나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긍정의 정치·경제학’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비전을 제시해주고 그 비전이 누적ㆍ축적되면 점진적인 상호발전을 구축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생의 경제학’에 이어 ‘긍정의 경제학’도 야심차게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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