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해 차이로 인한 불화
하나님 배신하는 행위란 말에
할머니 제사 앞두고 가출까지
제사상 음식에는 손도 안 대

종교 속 제사의 참 뜻
유교, 선조에 대한 감사 표시
불교, 극락왕생 기원 더해져
기독교, 죄사함·영생 기원

[천지일보=박준성‧강수경‧이혜림 기자] 현대인들의 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제사는 여전히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나 가정 내에서도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종교인들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경우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제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 현대인이 알아야 하는 제사에 담긴 의미를 살펴봤다.

◆선무당이 사람잡아… 교인만 ‘곤욕’
“그때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죄인 줄만 알았습니다. 십계명에 기록된 계명을 확신했습니다. 제사를 드리면 우상숭배라고 배워, 절하는 것도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에 사는 박수정(가명, 31) 씨는 고등학교 시절의 일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씨는 할머니의 제사 3일 전 가출을 감행했다. 교회를 다니던 자신이 제사에 참여할 수 없으며 절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박 씨는 명절을 앞두고 들었던 교회 목사의 설교를 떠올렸다. 해당 교회목사는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 4~6절의 내용을 들어 “제사 시 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은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배신하는 행위”라고 강조해왔다. 이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진 박 씨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에 대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강소연(33, 여,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씨의 집도 매년 명절마다 제사를 드린다. 개신교 신앙을 하는 강 씨는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에선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처럼 강 씨가 명절 때마다 곤욕을 치르는 이유는 제사 음식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꺼림직해 먹을 수가 없다.

목사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기 때문이다. 목사는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니 제사를 해서도 안 되고 특히 우상의 제물인 제사상의 음식을 먹는 것은 귀신의 제물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제사 음식을 먹으면 하나님이 아닌 귀신을 섬기는 증거가 된다는 설명이다. 하나님이 아닌 귀신을 섬긴다는 말에 놀란 강 씨는 가족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제사상에 올라가지 않는 김치만 골라서 밥을 먹었다. 이처럼 교회를 다니는 신앙인인 경우 가족과 함께 지내는 제사를 앞에 두고 고민한 기억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네티즌도 제사 논쟁 ‘시끌’
현대인들의 소통의 창구인 인터넷에서도 제사에 관한 논쟁은 역시나 뜨겁다. 네티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제사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일부 개신교 교인들은 ‘절대 제사를 지내면 안 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펼쳐 네티즌 사이에 반감을 사는 경우도 있다. 반면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 가정의 화목이 더중요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 ‘추도예배’를 대안으로 내놓는 네티즌도 있다.

‘ehdd******’는 제사에 대한 개신교의 원론적인 입장을 대변했다. 그는 “제사지내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엄청난 큰 죄라고 십계명에 나옵니다”고 못 박았다.

‘sany*****’는 신앙 때문에 주변 가족들로부터 질타를 받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사촌 형수님이 교회에 다니셔서 이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절을 안 하고서 계셨다”며 “사람은 참 좋은데 이 때문에 어른들에게 욕을 얻어 먹었다”고 말했다.

지혜롭게 처신해 제사문화를 바꾼 사례도 있다. ‘choi*****’는 “친정집 올케언니만 집안에서 개신교 신자인데도 추석이나 제사 때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제사음식을 만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올케언니의 행동으로 가족이 평화롭고 의사소통도 원활해져 교회의 제사법(예배)에 대해서도 좋게 여기게 됐다”고 덧붙였다. 결국 ‘choi*****’의 친정은 제사 형식에 변화가 생겼다. 제사상은 차리지만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ju75*****’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현행 대한민국의 제사제도가 인류 효행의 기준과 판단의 척도는 아니다”며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무조건 비판하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제사는 유교의 관혼상제 예법 중한 가지”라며 “기독교에서는 유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사를 ‘추도예배’라는 예식을 통해 효행의 기회로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불교계 시민단체에서 명절 차례상을 시연하고 있다.ⓒ천지일보(뉴스천지)

◆유·불·선 제사 한뜻 담겨 “죄 사하고 복을 빌다”
대한민국은 세계인이 인정하는 다문화·다종교사회다. 국민의 다수가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유형도 셀 수 없이 다양하며 동서양의 종교가 우리나라에서는 공존하고 있다. 대표 종단은 불교, 유교, 기독교(천주교, 개신교)다. 이 외에 민족종교, 무(巫)교, 신흥종교 등도 교세를 형성하고 있다. 종단마다 신을 섬기는 예법이 다르고 제사문화도 달라 다 소개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이에 유불선의 제사문화를 알아보고 그 의미를 살펴보자.

유교의 제사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바탕으로 한다. 고려 말 이후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집안에 설치한 사당)를 설치하려는 움직임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성화되며 조상에 대한 제사가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유교는 인(仁)과 효(孝) 사상을 모든 덕의 으뜸으로 친다. 효는 가장 귀한 생명을 조건 없이 주고 극진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준 부모와 선조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부모 사후에도 효를 다하려는 유교인들은 제사를 통해 신령(또는 조상의 영)이 흠향(기쁘게 받음)하게 되며 강복(하늘에서 복을 내려줌)도 따르게 된다고 믿는다.

불교의 제사는 죽은 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본래 불교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며 이는 석가모니의 뜻이기도 했다. 불교의 제사문화는 초기불교 당시 고대 인도문화를 수용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불교를 국교로 인정한 고려시대에 49재를 비롯한 천도재를 활발히 행했다. 영가(영혼)를 위한 불교의식은 제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승됐다. 고인을 추모하고 효를 실천하는 유교적 제사의미에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유대교, 기독교(천주교, 개신교)에서 설명하는 제사의 유래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모세 때에 정착됐다. 기독교 제사는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 인간의 죄를 대신해 속죄물(소, 양등) 또는 예물을 드려 죄를 사함 받기 위해 드려지는 예법이다.

육적인 예법에 따라 드려진 제사는 예수님 시대 이후 개혁되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드리는 예배문화로 정착된다. 영적 제사 곧 예배의 대표적 형식이 ‘성찬식’이다.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종단)에서 드리는 제사의식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기독교 제사의 변천사를 알지 못한 결과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도 수천 년 전에는 제사를 드리고 제사음식을 먹었다.

오늘날도 제사의 의미는 변치 않는다고 기독교계는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육의 세계를 벗어난 죽은 자들에 대해서도 성경은 죄사함을 기원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증거한다는 사실이다.

정요한(생명수교회) 목사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지만 영으로는 옥에 있는 영들에게 복음을 전파(벧전 3:18~19, 4:6)하신다”면서 “추도예배는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유교와 불교 그리고 기독교 등 모든 제사는 영혼의 죄를 사하고 명복과 극락왕생,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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