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용수 화가 ⓒ천지일보(뉴스천지)
펑크난 전시회 대신하는 ‘땜빵 전시’ 통한 인연도 소중
대부분 작품, 사람처럼 일상적 생활하는 호랑이 있어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화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은하게 풍기는 유화 물감 냄새와 함께 원색의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색채 속 그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한켠으로 따뜻함이 전해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호랑이 작가’로 알려진 이 그림의 주인 한국화가 모용수(46) 씨를 만났다. 그는 작년에 개인전 4번, 아트피아 5번 총 9번의 전시회를 열고, 오는 3월과 내년으로 예정된 새로운 전시회 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6년 전 전라북도 익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31살에 첫 개인전을 시작했다. 이후 지금까지 33번의 전시회를 열었으니 이 분야에서 그의 이름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가 적지 않은 전시회를 연 데는 그림 실력도 실력이지만 남다른 부지런함과 그의 인간적인 따뜻함이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

원광대학원을 졸업하고 사단법인 구상전의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원로화가 김흥수 화백과 인연을 맺게 됐다. 김 화백은 한 갤러리 관장에게 재밌는 그림이 있다며 개인전을 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고, 갤러리 관장은 모용수 화가에게 첫 전시회를 열자고 했다. 또 다른 갤러리 관장은 아내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쁘다며 그에게 전시회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는 소위 ‘땜빵’ 전시회를 통한 인연도 소중히 여긴다.

“항상 (그림을) 준비해 놔요. 예전에도 땜빵 전시를 많이 했어요. 어느 화랑에서 전시회가 펑크가 나면 연락이 와요. 그러면 바로 가서 전시를 해요.”

모 화가는 그 때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하루는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아침 일찍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인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인사동의 한정식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한정식까지 데려다 주고 밥값까지 미리 지불해준 그의 호의에 그 일본인은 그림도 한 점 사며 지금까지 십 년째 인연을 맺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맺은 인연으로 병원 등에서 그림 전시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그가 그린 대부분의 그림에는 호랑이가 들어있다. 그림 속 호랑이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장독대 위에서 기도를 하거나 남녀 호랑이들이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또 다른 어린 호랑이는 심부름을 가는 등 사람인 양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호랑이와 어떤 인연이 있는 걸까.

“동양화를 공부했고 민화로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까치호랑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됐어요. 또한 아내가 호랑이 띠인 점도 그렇고 인연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작가 내면에 따뜻함과 순수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그림들이 가능한 게 아닐까. 인터뷰 내내 그와의 대화는 그림에서 묻어나는 것처럼 따뜻함과 겸손함이 느껴졌다. 그는 작품의 소재를 주로 자신의 추억 이야기나 주변 이야기에서 찾는다고 한다.

화가로서의 재능에 대해 묻자 그는 형 이야기를 했다.
“재능은 저의 형이 있었어요. 하지만 형은 일본 유학 당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나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달리했어요.”
이 말을 하는 그에게서 형의 몫까지 열심히 그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느껴졌다.

재능에 대해 겸손함을 표시한 그지만 학창시절에는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또한 군대 시절의 반은 군대 선임의 지시 하에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그의 그림 실력은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계 상황은 어렵다. 인사동에서 사라지는 갤러리도 많다. 모 화가는 동기 중에서 자신만이 붓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여건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요즘 괜찮나?’라는 인사말을 할 정도다.

이런 상황이지만 그는 아직 피부로 와 닿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의 독특한 그림과 함께 부지런한 성격 때문에 같이 일하려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그림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림이 시집을 가게 되면 벽에 걸리게 되는데 집 사람들에게 휴식과 편안함도 주고 좋은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또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아내의 역할도 한몫 했어요. 저의 매니저 일도 해 주고 특히 일본어를 잘해서 통역 일도 같이 해 주고 있어요. 항상 고마워요”라며 아내에 대한 감사와 애정도 잊지 않았다.

앞으로의 바람에 대해 묻자 그는 “후배들이 많은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이것이 계기가 돼서 후배들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가 되고 자신의 길을 잘 펼쳐나갔으면 좋겠다”고 후배를 먼저 챙겼다.

이어 그는 “개인전 100번을 하면 모용수를 찾아오지 않을까요? 100번 하고 나서 고향 전라도에 가서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도 모용수 그림 한 점 갖고 싶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가지도록 부지런함을 떨고 싶어요”라며 수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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