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좋은 세상의 시작! 어느 건설공사 현장에 붙어있었던 표어다. 좋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어느덧 저물고, 곧 시작될 박근혜 정부가 대한민국호(號)의 새움을 돋게 하는 바야흐로 신천지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5년 전 이때, 서울 양재 네거리는 신분당선 지하철 공사로 인해 일대가 교통 혼잡을 이루었고 행인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구간의 공사를 맡았던 D건설에서는 서두와 같은 내용을 공사현장에 큼지막하게 써놓았는데, 그 당시에 사람들은 불편한 길을 걸으면서도 정권 교체바람을 타는 시기라 새봄이 오는 길목에서 그 구절을 읽으며 희망을 가졌다.

신분당선 공사가 계획대로 끝나고 지금은 지하철 운행을 개시하여 서울 강남과 양재 일대에서 분당 쪽으로 오가는 이용객들에게 많은 편리를 주고 있다. 그때 건설현장에 붙어있던 ‘좋은 세상의 시작’이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긍정의 힘을 믿게 한 좋은 표어였다. 그 당시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즈음이었는데, 이 말은 건설업체가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가 아니라 새 정부가 펼쳐나갈 국정의 청사진, 국민의 가슴 속에 희망과 기대로 아로새겨지고 실제적으로 국운 상승과 함께 국민 모두가 편히 잘 사는 5년이 되도록 기대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흘러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이제 20일이 채 남지 않았다. ‘세월은 쏜살과 같다’는 말을 새삼 실감나게 한다. 거슬러 올라가서 이 대통령이 당선되고서 취임할 때까지 90일 동안 당선인 신분에 있으면서 국민에게 수시로 약속하고 언급했던 말은 “우리나라의 경제가 활발한 가운데 국민을 잘 섬기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말이었다. 이 대통령의 약속을 믿고 새로운 세상, 좋은 세상이 온다는 것에 국민은 5년 동안 기대를 걸었지만 약속한 세상은 오지 않고 또 다시 새로운 계절과 새 정부가 둥지를 트고 있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를 겪어온 국민은 그간의 국정 성과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을 잘 하였고, 어떠한 점에서 미흡하였으며 따끔하게 질책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러함에도 대통령 스스로 자신에 대한 평가에서 “세계서 가장 열심히 한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언급하였지만 현 정부 5년간의 평가는 국민이 엄정하게 하여 후세에 알려질 것이다.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인에 대하여 불신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국민이 지향하는 ‘먼산바라기’는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세상이 오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했지만 그 실현이 어렵다는 점을 염려함이다.

세월의 흐름은 세상 모든 일을 변하게 하는데, 그러한 변화는 사람들이 부정하거나 거스를 수 없는 엄연한 자연법칙이기도 하다. 아무리 시대사조가 변한다 하더라도 국민을 담보하고 있는 국가 또는 정부의 근본은 변하지 않을 터이다. 다시 말하면 국민을 안전하게 하는 것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책무는 변할 수 없는 근본인 것이다. 시기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국민이익이 우선이고, 국민행복을 위한 노력은 마찬가지로 당연하다.

새 정부 출범을 위한 대통령직인수위의 밑그림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양이다. 국회는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조직법을 개정하여 차기 정부의 근간을 확정해야 하건만, 정부부처의 기능 조정이나 명칭 등과 관련해 여야 간 또는 현 정부와 새 정부 간 이견이 있고, 일부 알력도 생겨나고 있는 양상이다. 부처 명칭만 해도 그렇다. 미래창조부, 해양수산부 등 신설조직은 무관하지만 기능 조정 없이 명칭만 변경되는 행정안전부는 그 명칭으로 인해 어수선한 분위기다.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지원과 지방행정을 관장하고 있는 행정안전부가 정부조직법(안)대로 안전행정부가 되면 약칭을 어떻게 써야할지도 고민거리다. 지금까지는 ‘행안부’로 사용하고 있지만 변경되면 ‘안행부’로 해야 하는데, 뉘앙스에서 “안 행복하다”거나 부정적인 용어가 티가 된다. 작은 문제라 하겠지만 명칭변경이 되면 각종 법령을 개정하여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전부로 바꿔야 하고, 간판이나 심지어 업무수첩, 조직원의 명함에 이르기까지 고쳐야 할 게 많다. 정책기조의 큰 변화 없이 무던히 잘 있는 명칭의 변경인데,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행정자치부’를 ‘행정안전부’로 변경한 것이나 박근혜 정부가 다시 ‘안전행정부’라 고치는 것은 국민적 입장에서 보아도 실익이나 당위성이 크게 없어 보인다.

이 문제가 정부 조직 개편안 공청회에서도 지적되었다. 국회 행정안전위 이재오 의원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느냐”고 하면서 “(이름) 바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간판 고치는 데만 해도 6000만 원이 든다”며 반발했다. 이에 인수위 모 위원은 ‘안전’을 강조하는 것이 대한민국 안전 인프라를 깔기 위한 메시지를 던지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 안전은 국가 기능의 기본이고, 매슬로우의 욕구이론 5단계설을 보아도 안전(安全)욕구는 생리적 욕구 다음의 인간의 기본 욕구다. 그러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안전업무가 국가정책의 핵심이 되는 마당에 그게 그것인 정부부처의 명칭 변경이 과연 ‘좋은 세상의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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