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헌기록과 후손들의 사진을 참고해 화가 채명섭이 그린 입지 최사립 초상화. (사진제공: 한국효문화센터)

삼강행실도 기록… ‘소학’ 내용대로 부모에 효 다해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삼강행실도는 삼강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은 책이다. 속편인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서는 ‘사립단지’라는 제목으로 효자 최사립이란 사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사립단지’의 주인공 입지(立之, 호) 최사립(崔斯立, 1505~?)은 1505년(연산군 11년)에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에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최결(崔潔)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부지런히 학문을 수행해 한결같이 ‘소학(小學)’의 내용대로 실천하며 부모를 지극히 섬겼다. 그의 효성은 근동(芹洞)에도 퍼져 칭송이 자자했다.

과천시 막계동에는 효자 최사립과 함께 ‘벽상갈화(壁上葛花)’의 전설이 전해온다.

추운 겨울 최사립은 약을 써도 낫지 않는 부친의 병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때 병환 중인 부친이 최사립에게 “내가 칡꽃을 먹으면 살 것 같다”라고 했는데, 때는 엄동설한이라 칡꽃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최사립은 정한수를 떠놓고 칡꽃을 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신령에게 기도했고, 그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다 죽어있던 칡넝쿨이 방 벽을 타고 뻗어 나와 칡꽃을 피웠다. 최사립이 꽃을 따서 정성을 다해 만든 갈화탕으로 부친의 병환은 씻은 듯이 다 나았다.

또 최사립은 모친이 몹시 아플 때에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최사립은 어머니의 병이 몹시 심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단지해 모친을 구원했고, 모친이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부친을 기쁘게 하고자 친척 일가를 불러 모아 날마다 술과 고기를 대접했다’고 기록했다.

▲ 최사립 효자 정문 전경 (사진제공: 한국효문화센터)
최사립의 이러한 지극한 효성은 1535년(중종 30년) 4월에 경기도 관찰사 윤은필이 장계를 올려 왕에게까지 전해졌다. 중종은 효자문을 세우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흔쾌히 허락하고 그를 표창하도록 했다고 한다.

마침내 1574년(선조 7년) 유신들의 건백에 따라 선조는 효자 배천군수 최사립을 통정대부 이조참의로 추서하고 그의 효행을 후세에 전했으며, 이후 ‘삼강행실록’에도 그 사적을 기록했다.

최사립의 ‘효자정문’은 1995년 과천동 351-10번지에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홑처마 양식으로 복원했다. 현재 과천시 문원동 89-12번지에 자리 잡았다.

▲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 기록된 ‘사립단지’ (사진제공: 한국효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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