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는 소리가 들린다. 천지지간에 울려 퍼지는 소리다. 이제 기나긴 잠에서 깨어나라 호령한다.

선견(先見)자, 선지(先知)자, 선각(先覺)자라 함은 먼저 보고 알아 깨닫는 자를 뜻한다. 그러나 선구(先驅)자라 함은 깨닫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은 바를 몸소 실현해 위기에서 구하는 행동하는 자를 일컫는다. 오늘날을 보자. 외치는 자는 많다.

그러나 그 외침은 메아리로 다시 돌아와 늘 우리 곁에 그냥 그렇게 있을 뿐이다. 오늘 외친 소리가 자고나면 우리 곁에 있고, 내년 아니 후년에도 똑 같은 소리를 우리는 듣게 될지도 모른다. 이래선 안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외치는 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다. 진정 깨달았다면 그 깨달은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실천만이 요구될 뿐이다.

잠시 일제치하로 돌아가 보자. 그 시절 나라만 빼앗겼던 것이 아니다. 정신을 빼앗겼으며, 문화를 빼앗겼으며, 심지어 성씨(姓氏)마저 빼앗겼으니 송두리째 빼앗겼다. 당시도 깨달았던 사람들은 없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빼앗겼음을 깨달았다면 다시 찾기를 애쓰고 노력할 때 진정 깨달은 자라 할 것이며, 또 실천에 옮기기에는 주변의 많은 악재가 도사리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환경에 모두가 굴복당할 때 오히려 그 환경을 이기고 악재에 분연히 맞선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잃었던 나라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심훈의 상록수, 목숨을 건 채영신과 그 뒤를 잇는 박동혁의 계몽운동은 보지도 듣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백성들의 눈과 귀와 정신을 일으켜 세웠고, 정신이 깨이니 민족의 독립을 필마(匹馬)로서 구하던 선구자가 나오게 되었음은 익히 잘 아는 바다.

그렇다면 이 시대는 무엇에서 깨어나야 한단 말인가. 생각과 사상과 가치관의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념의 대립이며 계층과 지역과 세대와 빈부의 대립이며 종단간 그리고 종파간의 대립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혼란이 편파와 편견 그리고 편향을 낳게 되고, 이 사회는 반목과 질시로 용서 화해 상생 대신 저주와 핍박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위기다.

그렇다면 구해야 한다. 그것은 구호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행동이 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하다. 그 희생은 상대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다. 그것이 곧 자기를 지키는 길임을 기억하자.

우리민족은 예부터 세계 그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민족임을 증명하는 구전(口傳) 문화가 있다. 예를 들면 나(我)라는 존재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吾等)가 중요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이며 ‘내 아버지 어머니’가 아닌 ‘우리 아버지 어머니’였다. 참으로 자랑스런 민족이다. 결국 단일민족, 배달민족, 백의민족이다. 우리는 ‘하나’ 곧 한 핏줄로 맺어진 한 형제임을 잊지 말자.

바로 ‘우리(吾等)’를 회복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 곧 중도(中道)다. 본지가 가야 할 길이다. 그리고 이 중도를 완성하고자 분연히 일어서니 개혁(改革)이다. 결국 중도개혁은 원래 우리의 자랑스럽고 위대하고 거룩한 정신과 문화를 회복하는 외침만이 아닌 행동하는 절규임을 꼭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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