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국의 지적재산권 수지가 '만년 적자'에 허덕이는 것은 특허출원 건수가 많은데 비해 특허의 '질적 성장'이 미흡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특허 출원건수는 2011년 기준 27만9천건으로 세계 5위 수준까지 급성장했지만 로열티를 벌어들일 수 있는 대형 특허는 일부 기업만이 보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국 특허관리전문회사(NPE)가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 등 국내 IT 대표기업을 대상으로 맹공을 펼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 삼성전자, 작년 특허괴물 소송 건수 2위
23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에 국내 전기전자(IT) 기업들이 특허권 사용료로 외국에 지급한 금액이 약 1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 중 '특허괴물'로 불리는 해외 특허관리전문회사(NPE)에 국내 기업들이 지불한 로열티가 상당액을 차지한다.

NPE는 특허를 실제 생산에 사용하지 않으면서 다른 기업들에 특허 소송을 제기해 로열티를 받아내는 기업을 뜻한다.

미국의 반(反) 특허단체 '패턴트프리덤'의 최신 집계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특허괴물의 소송을 많이 당한 기업 2·3위에 나란히 올라 있다.

지난해 특허괴물의 소송을 가장 많이 당한 기업은 애플(44건)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37건, LG전자가 24건으로 뒤를 이었다.

2011년에는 삼성전자와 애플이 각각 43건의 소송을 당해 공동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당시 29건의 소송을 당해 순위가 12위에 그쳤던 LG전자는 지난해 특허괴물의 새로운 표적으로 떠오르며 순위가 급상승했다.

국내 IT기업을 표적으로 삼은 특허괴물은 한국에서 매년 상당한 액수의 로열티를 챙기고 있다.

법무법인 민후의 김경환 변호사는 "세계 최대 특허괴물인 인텔렉추얼 벤처스가 3G 관련 특허 분쟁을 통해 국내 기업으로부터 챙긴 돈이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며 "인터디지털, 램버스 등 다른 특허괴물도 수천억원을 받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인터디지털의 2011년 전체 매출의 29.1%는 한국 기업들로부터 나왔고 같은 해 캐나다 모사이드 매출의 한국 비중은 50%에 육박했다. 또 다른 NPE인 아카시아 리서치도 삼성전자, LG전자 등이 주요 수입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인터디지탈, 모사이드, RPX(Rational Patent Exchange)가 한국에서 챙긴 돈만 공시 서류상으로 1천740억원에 달한다.

◇ 특허 출원에만 열중… 활용은 '미숙'
한국이 세계 5위 특허 출허 강국임에도 지적재산권 수지 적자가 날로 늘어나는 것은 거액의 로열티를 받을 수 있는 '질적 특허'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김범태 IP 대외정책연구팀장은 "특허 건수가 증가하는데도 관련 수입이 늘지 않는 것은 소위 말하는 '대형 특허'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특허 건수로 실적을 올리려는 일부 기업·연구소의 문화 때문에 소규모 특허가 난립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를 출원하는 데만 정부 재정지원이 집중돼 있어 특허 보호나 활용에 미숙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휴대전화 CDMA나 MP3 기술은 한국 기업이 개발해놓고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대표적 기술로 꼽힌다. 미국 퀄컴은 CDMA 기술 특허를 세심히 보호한 덕에 매년 거액의 로열티를 벌어들이며 우량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 김홍일 대표는 "지난해 지식재산권 관련 예산 9조4천억원 중 창출 분야에만 81%인 7조6천억원이 집중됐다"며 "지식재산권 활용에 투입된 예산은 8.7%인 8천억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근 특허 활용과 보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국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국내 최초로 특허에 투자하는 지식재산권 펀드가 출범했다. 산업은행과 지식재산권 전문 운용사 아이디어브릿지자산운용이 조성한 사모펀드다.

지난 21일에는 산업은행이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하는 1천억원 규모 지식재산권 펀드를 설립했다.

특허는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회사가 특허 소유권을 펀드에 넘기면 펀드가 자금을 대는 방식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사가 특허를 되사올 수 있는 '세일 앤드 라이선스 백(Sale and License Back)'으로 운영돼 특허를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홍일 대표는 "지적재산권을 무기화하고 금융자산화하는 추세에 대응해 지식재산기반 금융서비스 사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하고서 반덤핑 제소에서 특허 침해소송으로 무역 보호수단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적당한 로열티 지급이 산업적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지급액이 많으면 기업 가치와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키움증권 박연채 리서치센터장은 "국내에서 창조적 제품을 만들어내지 않는 이상 상당한 규모의 로열티를 계속 지급해야 할 것"이라며 "지금으로서는 국내 기업이 가진 특허를 외국 기업과 교환해 비용을 상쇄하는 방향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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