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언론인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이긴 것은 이긴 것이고 진 것은 진 것’이다. 광장을 열변과 함성으로 뒤덮던 대선 열기는 어느 새 냄비 식듯 차가워졌다. 이겼다고 환호작약하던 사람들도, 선거에 졌다고 ‘멘붕’에 빠졌던 사람들도 빠르게 평상심을 회복해간다. ‘이긴 것은 이긴 것이고 진 것은 진 것’이지만 어느 쪽에 표를 던졌든 절대 다수인들의 일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신과 양심에 따라 최선을 다했으면 그만이다. 그 결과는 이기고 진 그대로 쿨(Cool)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된다.

이것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민주주의의 진면목이다. 선거에서 졌다고 이긴 사람들에게 억울하고 부당하게 빼앗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선거에서 이겨 정권을 잡았거나 그 편에 섰더라도 그들은 과거 야만적인 정복 전쟁 시대의 승리자, 정복자가 아니다. 선거에서 졌더라도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으로, 변호사는 변호사로, 교수는 교수로, 사업인은 사업인으로, 평범한 가장은 가장으로, 주부는 주부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험난한 역사를 헤쳐오긴 했지만 우리 민주주의가 사실 선거에서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할 만큼 그렇게 유치하지 않다는 정도는 누구나 실감한다.

그렇더라도 아직 우리 선거는 하늘도 땅도 단 번에 내던져 버릴 것 같은 위험천만한 싸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혈투와 같은 양상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는 국민을 볼모로 잡은 이념과 지역 대결의 극심한 패거리 정치와 정권을 잡은 쪽의 승자독식, 패자배제(敗者排除)와 같은, 역시나 패거리 중심의 국정운영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를 실시하고 있을 때나 선거가 끝났을 때나 ‘이긴 것은 이긴 것이요 진 것은 진 것’으로서의 결과를, 나타난 그대로 인정하는 아름다운 승복과 수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과거 경험이 말해주듯이 승리를 위해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치른 선거 후에는 패자의 불복(不服)이 끊이질 않아 정국이 시끄럽고 혼란스럽기 예사였다.

확실히 과거는 그러했다. 그 같은 과거의 사례와 비한다면 18대 대선을 치르고 난 지금의 분위기는 선거 열기로 법석일 때와는 금석지감의 차이다. ‘언제 선거가 있었더냐’ 할 만큼 평상으로의 복원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적어도 일반 국민들의 모습에서는 명백히 그러하다. 그만큼 우리 민주주의의 성숙과 함께 국민의식과 선거 문화 역시 몰라보게 성숙했다는 증거다. 선거에 패배한 직접 당사자들 역시 패배의 아픔을 조용하고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이것 역시 성숙한 모습이다. 그들은 선거 패배의 원인을 선거 자체나 어떤 외부 요인 탓으로 돌려 책임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탓으로 돌리며 일찍부터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몸부림에 나섰다. 과거처럼 이긴 편을 향해 생트집을 잡거나 싸움을 거는 모습이 아니라 현명하게 멀리 보고 국민을 향해 구해하며 다가간다.

승자들의 태도 또한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승리의 우쭐함을 극력 자제하는 것이 분명해보이며 역지사지로, 진 사람들을 ‘멘붕’에 빠뜨린 패배의 쓰라림을 과거 어느 시절의 어떤 승리자들보다도 잘 이해하는 것 같아 보인다. 국민들은 지켜본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승패는 돌고 도는 것이며 오늘의 승리에 도취해 교만하면 다음의 승리는 놓친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여야는 정치와 국정 운영의 불가피한 파트너다. 승자의 겸손함은 정치와 국정 효율을 높이고 국민을 편안하게 한다. 지금처럼만 승자가 겸손하고 야당이 정쟁에 몰입하기보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견지한다면 더는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북새통 같은 선거를 치르고 나서 일반 국민들이 빨리 평상심을 회복하고 일상으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필시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18대 대선 후의 분위기가 평상으로 빨리 반전될 수 있었던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100% 대한민국’ ‘동서통합’과 같은 ‘배제’가 아니라 ‘통합’과 ‘아우름’의 선거 공약이 주효했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념과 지역, 계층과 소득편차에 의한 국민 갈등에 지치고 그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는 패거리 정치에 분노하고 좌절한 국민들에게 ‘국민 통합’은 어쩌면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파장과 울림을 낳아 놓은 것이 아닌가.

국민통합은 그만큼 시대적 국가적 국민적으로 절실하고 갈급한 여망이었다. 그 구호는 국민들에게 평온함과 안도감을 심어 주었다. 그는 더구나 빈말은 하지 않으며, 한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정치인으로 성공적으로 국민들에게 그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따라서 그의 말에 실린 그 같은 신뢰와 기대가 일반 국민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얼른 제자리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안 있어 신구 정권의 인계인수가 이루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새 정권이 들어선다. 이른바 ‘민생정부’ ‘국민행복의 정부’이며 무엇보다 ‘국민통합의 정부’다. 그 명칭을 무엇이라 부르든 간에 그 기반은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반대 의견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제도이나 그것은 상대에 대한 부정이나 증오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존중과 긍정을 전제로 한다.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나 복수심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증오나 복수의 마음은 버리고 자유스럽게 표현되는 ‘No’와 ‘Yes’를 건설적인 소통으로 승화시켜 ‘국민통합’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대명제가 소기의 성과를 내어 나라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만파식적’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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