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박근혜 당선인이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는 생활밀착형 주요 정책들을 구체적이고 신뢰감 있게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칙과 약속이행을 유달리 강조했던 박근혜 당선인의 정치적 강점이 주요 대선공약과 맞물리면서 유권자의 표심, 특히 50대의 선택을 이끌어 낸 것이다. 반대로 이 점이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전 후보 측에는 뼈아픈 대목이기도 하다.

박근혜 당선인이 스스로 약속한 ‘100% 공약 실천’으로 탄력을 받은 가장 인상적인 공약 몇 가지만 짚어 보자. 먼저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2013년부터 기초노령연금 2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운 어르신들 입장에서는 단비 같은 대선공약이었을 것이다. 암, 심장, 뇌혈관, 희귀난치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은 100%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돈이 없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중증 환자들과 그 가족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한마디로 생명을 살리는 대선공약이었을 것이다.

0세부터 5세까지 보육과 교육을 정부가 책임지겠다 했다. 불과 몇 년 전, 아이들 점심 한 끼의 무상급식도 반대했던 당시 한나라당 입장에서 보면 천지개벽할 일이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당선인을 ‘따뜻한 보수’의 이미지로 이끌어 낸 견인차였다. 대학등록금을 실질적인 반값으로 낮추겠다는 약속과 함께 2014년부터 매년 25%씩 확대해, 2017년까지 고등학교 수업료와 입학금 등을 지원하는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가 탄생해도 보편적 복지의 지평이 더 확대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벌써 마음이 흔들리나?
그러나 최근 인수위나 새누리당 분위기를 보면 핵심 대선 공약들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16일, 정책공약을 하나씩 분석하고 진단하면서 지나치게 포괄적인 부분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선공약에서 다루지 못한 비어 있는 부분은 없는지도 살펴보겠다고 덧붙였다. 겉으로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리지만 자칫 재원이 많이 들어가는 포괄적인 공약은 빼고 다른 대안을 찾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분위기는 더 노골적이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일찌감치 공약 재점검 입장을 밝혔다. 심재철 의원은 예산이 없는데도 무조건 공약대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며 예산이 많이 드는 대형 공약은 출구전략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몽준 의원도 대선 공약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새누리당 중진들이 바람을 잡고 인수위가 동조하는 방식으로 ‘박근혜표 복지공약’이 새 정부 출범도 하기 전부터 조금씩 빛을 잃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선이 끝났다 해서 벌써부터 대선공약을 뜯어 고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는 아주 잘못된 일이다. 지금 인수위는 대선 공약을 실행할 국정 로드맵을 짜는 것이 먼저다. 그 구체적인 결정은 정책 담당자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애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다면 그 역시 구태의 모습이요, 박근혜 당선인의 원칙과 신뢰에도 치명상이 될 것이다. 혹여 지킬 생각이 없는데도 공약을 했다면 그건 사기에 다름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 원칙을 흔들면 안 된다. 재원이 부족하다면 증세로 가는 것이 옳다. 대기업과 부유층, 그래도 부족하면 중산층에게 세금을 더 걷어서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당선인이 언젠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미생’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옛날 얘기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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