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올해는 한국전쟁이 휴전협정으로 마무리된 지 60주년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인수위 첫 보고를 국방부로부터 받는 과정에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유해를 북한과 공동으로 발굴하자고 제안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참으로 멋진 제안이다. 대북정책은 물론 중국과의 관계까지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선언이다. 필자는 권철현 세종재단이사장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파주의 북중군묘역에서 1년째 매일 위령기도를 올려왔다. 최근 국방부는 많은 예산을 들여 이 묘역을 아름답게 단장했다. 이러한 노력은 동아시아의 평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적이라도 전사자에 대한 예우는 정중해야 한다. 초(楚)의 장왕(莊王)은 ‘3년 동안 날지 않다가 한 번 날면 하늘로 치솟고(三年不飛, 飛將沖天), 3년 동안 울지 않았지만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三年不鳴, 鳴將驚人)’는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대단한 정치적 모략과 원대한 포부를 지닌 명군이었다. 내부의 모순을 해결한 그는 BC 597년에 중원의 맹주였던 진(晋)과 필(邲)에서 싸워 승리하고 패주로 등장했다. 당시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면 적의 시체로 ‘경관(京觀)’이라는 높은 단을 쌓고 조상과 후손에게 무공을 자랑하는 의식을 올렸다. 신하인 반당(潘黨)이 그렇게 하자고 건의하자, 장공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알 바는 아니다. ‘무(武)’는 창(戈)을 멈춘다(止)는 뜻이다. …… 무(武)란 난폭한 자를 다스리고, 무기를 거두어 싸움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공을 세우고, 만민을 화합시키며, 물자를 풍부하게 해야 후손들이 그 공적을 잊지 않는다. 나는 진군을 죽여 난폭한 짓을 저질렀고, 제후들에게 시위하느라고 무기를 거두어들이지 못했다. 난폭하고 무기를 거두어들이지 못한 내가 어떻게 큰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아직도 진이 망하지 않았으니 어떻게 공적을 세웠다고 하겠는가? 백성들이 바라는 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내가 백성들을 편안히 했다고 하겠는가? 덕이 없으면서도 제후들과 다투었으니 만민을 화합시켰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남의 나라 위기가 나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니 어떻게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무덕 가운데 한 가지도 지니지 못한 내가 후손들에게 무엇을 자랑하겠는가? 옛날 성군은 불경한 자를 토벌하여 그 우두머리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묻은 곳에 단을 쌓고 경관이라 했다. 의롭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자들을 징계했음을 알린 것이다. 진은 큰 죄를 범하지 않았고, 그 백성들은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여 목숨을 걸었다. 어떻게 그들의 시신으로 경관을 쌓고 자랑하겠느냐?”

장왕은 진군에게 자기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군사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무’를 폭력의 종결로 규정한 장왕은 진정한 포무천하자로서 기백과 이상을 보여주었다. 역사는 이러한 장왕에게 춘추오패 가운데 한 자리를 주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함으로써 유발된 트로이전쟁은 9년이 지나도록 종결되지 않았다. 트로이를 침공한 그리스 연합군은 사령관 아가멤논과 용장 아킬레우스의 불화로 지루한 대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파트로클로스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친구이자 상사였던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출전했지만,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에게 피살되었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와 싸워 그를 죽이고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트로이 성벽 주위를 돌았다. <일리아드>의 저자 호메로스는 자신과 대결하다가 죽은 적의 시신에 모욕을 가한 아킬레우스를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뒤꿈치를 맞고 죽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헥토로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왕이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하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준다. 이러한 호의로 아킬레우스는 비로소 영웅의 반열에 올랐다. 고대 동아시아의 초원을 누볐던 유목민족의 전사들은 자신과 싸우다가 죽은 호적수의 이름을 아들에게 붙이기도 했다. 인류는 갖가지 원인으로 싸우지만, 싸움의 마무리를 할 줄 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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