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신닷컴 강성태 대표. ⓒ천지일보(뉴스천지)

학교폭력·피부병 등 어두웠던 학창시절 ‘꿈’으로 이겨내
후배들 나처럼 아픈 기억 없었으면… ‘공신’이 도울 것

[천지일보=이솜 기자] ‘모든 학생에게 멘토 한 명씩.’

이른바 ‘공부의 신(공신)’들의 꿈이다. 2001년 수능 전국 상위 0.01%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해 ‘공부를 신나게’라는 이름으로 교육봉사 동아리 ‘공신’을 만든 강성태 대표를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6년 강 대표와 그의 동생 강성영 씨가 공부법을 알려주는 동영상 서비스를 개시하며 시작한 공신은 각종 언론매체와 MBC ‘공부의 제왕’, KBS 드라마 ‘공부의 신’ 등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이 사이 청소년 기관과 일선 학교에서 방과 후 프로그램 ‘공신 멘토링’ 등을 운영하던 공신은 2008년 11월 사회적 기업을 선포하며 ‘공신닷컴’이 됐다.

회원 수만 약 25만 명에 달하는 공신닷컴(www.gongsin.com)은 1만 명 이상의 저소득층 학생에게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인도네시아에 공신(마하멘토)를 전파하는 등 국내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강 대표는 손사래를 친다. 강 대표는 “나는 그저 나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공신을 통해 학창시절 겪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훤칠한 키에 여유 있는 웃음, 작지만 소신 있는 말투. 무엇보다 한국 학생들의 꿈인 서울대 출신인 그가 엘리트 코스가 아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왔다는 것은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강 대표는 “학창시절 나는 어리바리한 소위 ‘찌질이’였다”고 고백했다. 경상북도 문경시 점촌에서 서울로 이사 온 강 대표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다.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불려가 맞는가 하면 같은 반 학생에게 가래침을 얼굴에 맞은 채 씻지도 못하는 등 비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강 대표에게 공부할 의지를 갖게 해준 것은 바로 짝사랑하던 그의 후배였다. 강 대표는 좋아하는 후배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 가끔 대학에 진학한 선배들이 학교에 찾아올 때면 정말 멋있어 보였고, 좋은 대학에 간 모습을 후배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것이 그가 공부를 하게 된 목표이자 계기다. 좋은 성적에 강 대표는 자신감을 찾게 됐지만 이도 잠시, 고등학교의 공부는 지금껏 하던 것과는 달랐다. 고교 입학시험 점수는 전교 꼴찌에 가까웠고 고2 때까지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를 몰라 갈팡질팡했었다.

그러던 중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한 문제집을 세 번에서 다섯 번은 반복해서 푸는 것을 보고 강 대표는 열 번을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가장 취약했던 수학은 이 방법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이에 강 대표는 시중에 나온 문제유형과 해법들을 모조리 외우기로 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성적은 올랐지만 이번엔 피부병이 문제였다. 강 대표는 콜린성 두드러기가 있어 긴장을 하거나 집중을 받게 되면 얼굴을 제외한 전신에 우둘투둘 붉은 반점이 솟아오르면서 피부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차도는 없었고, 의례 수능한파로 히터를 틀어놓는 고사장은 민감한 피부가 견디질 못하는 탓에 수능을 잠시 포기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그간 공부한 실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이날 고사장에서는 히터를 거의 틀지 않았다. 결국 이 시험에서 강 대표는 400점 만점에서 396점을 맞았다. 2001년 수능 전국 상위 0.01%이라는 타이틀은 이날부터 시작됐다.

이젠 사회적 기업의 CEO로 9명의 정직원과 누적 1000명이 넘는 멘토들을 리드하고 있는 강 대표지만 그의 시행착오는 계속됐다.

강 대표는 공신 이름을 도용해 문제집을 시리즈로 발간하고 사이트까지 만든 사교육 업체와의 소송 사건을 겪으면서 매우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겉으로는 동반성장을 외치면서도 자사의 이익을 위해 교육봉사를 하려는 단체의 이름마저 빼앗아가는 이 나라의 현실이 원망스러웠다”며 “결론적으론 이기게 됐지만 무척 괴로웠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 돈이면 더 많은 학생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신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공신의 상표를 사려는 업체들은 점점 많아졌다. 심지어는 공신 관련 상표권과 공신닷컴 사이트를 넘기는 조건으로 10억 원을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정치계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지난 4.11총선 때 새누리당 청년비례대표 제안을 받은 것. 그러나 강 대표는 이 모든 것을 고사했다. 강 대표는 이에 대해 “당시 20대였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보내고 싶었다”며 “국회의원 할 능력도 없고, 하면서 오히려 내 꿈과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누가 봐도 혹할 만한 제안들을 뿌리친 강 대표의 롤모델 혹은 멘토는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안철수 전 대선후보, 빌 드레이튼 아쇼카 창립자다. 인터뷰 말미에 강 대표는 어떤 멘토가 되고 싶은지 질문을 던졌다. 예상 외로 그는 ‘동네 형’을 꼽았다. 강 대표는 “거창한 멘토 보다는 친근한 형·오빠·삼촌이고 싶다”며 “인생을 공유해줄 수 있는 친한 형 한 명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 아닌가”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강 대표의 꿈인 ‘모든 학생이 멘토를 가지는 것’은 언뜻 보기에도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공부의 신에서 사회적 기업가로 변신한 이 청년은 꿈을 놓치지 않았고, 이미 수많은 멘티(멘토링을 받는 사람)는 멘토가 돼 공신으로 돌아와 강 대표와 함께 꿈을 이루고 있다.

강 대표가 지은 에세이 ‘공부의 신, 바보 CEO 되다’ 첫 부분에는 도종환의 ‘담쟁이’가 있다. 공신이란 이름을 가진 담쟁이가 이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어떻게 이뤄나갈지 기대가 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