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날 여기 가뒀다는 건가요?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보다시피 난 미치지 않았어요.”
지난 6일 방송된 MBC 드라마‘ 백년의 유산’ 2회에서 유진의 대사다. 이날 방송에서는 유진이 시어머니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하는 장면이 전파를 탔다. 방송이 나간 후‘ 막장’이라는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는 지극히 현실이 반영된 이야기였다. 하루 평균 3명이 유진과 같은 상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고 있다. 퇴원이 불가해 진정을 넣지 못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이보다 더 피해자가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드라마보다 더 기막힌 ‘정신병원 감금.’ 왜 피해자는 더 늘어나고 있을까.

 

계속되는 정신병원 불법 감금, 브레이크 없나
서류만 보고 퇴원 판단… 뉴욕, 사법부가 입원 결정

[천지일보=이솜 기자] 우리나라에선 합법적으로 사람을 감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직계가족 2명과 정신과 전문의가 ‘정신병이 있다’고 판단을 하면 당사자의 상태와 관계없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된다. 퇴원도 마찬가지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정신병원에 감금돼 고통을 호소하고, 퇴원을 해도 다시 감금될까봐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2006년 개설된 네이버 카페 ‘정신병원피해자 인권찾기 모임’에는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사람들의 하소연이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부당하게 강제입원을 시킨 정신병원에 권고를 내린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례도 지난 8일까지 잇따라 게재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2011년 6월까지 ‘정신병원에 불법 감금당했다’는 진정은 1250건으로, 하루 평균 3.4명이 이같이 호소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군데 정신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내 딸이 별 증상은 없지만 말썽을 부리기 때문에 병원 입원을 통해 말을 잘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취지로 문의를 하자 대부분의 정신병원이 그러한 이유로는 입원이 불가능하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모 사설 응급업체를 통해 알아낸 한 정신병원에서는 “여기는 폐쇄병동이다. 알고 있나”라며 “특별한 정신과 기록이 없어도 여기서 진료를 받으면 된다. 딸이 거부할 경우 사설 응급업체를 통해 강제로 끌고 오거나 영양제를 맞으러 간다고 하는 사례가 있다”며 불법 감금 노하우까지 알려주는 친절함(?)을 보였다.

◆‘참 쉬운’ 정신병원 불법 감금
2009년 정신보건법 24조 중 정신병원 입원 조건이 기존 보호의무자 1인에서 2인으로 개선됐지만 큰 효과가 없어 좀 더 까다롭게 개정을 하거나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불법 감금 사례 중에는 아예 가족이 짜고 병원에 감금시키는 경우가 많고 또 입원을 위한 절차인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서가 없거나 실제 보호의무자가 아니라도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입원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계속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다”며 “1월 내 개정안이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목포대 권구영 교수는 “가족들이 피해자는 병을 인정하지 않지만 실제 병이 있다며 입원을 요구했을 때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만 부합한다면 입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술에 취해있는 상태에서 입원했다가 술이 깨도 퇴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번 입원하면 퇴원이 힘든 구조도 피해를 확대시키는 원인이다.

권 교수는 “정신보건심판위원회가 매월 회의를 열고 퇴원 결정을 내리는데, 서류상으로만 점검을 하고 있다”며 “이에 의사가 병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을 내리면 실제 그렇지 않아도 퇴원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인권위가 발표한 ‘정신장애인 인권국가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입원기간은 심각하게 장기화돼 있다. 또한 퇴원을 해도 환자 중 55.9%는 하루 만에 재입원되고 있었다.

◆정신병원 구조, 개방적으로 변해야
전문가들은 정신보건법 개정만으로 정신병원 감금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정신보건법 개정과 동시에 전반적으로 폐쇄적인 정신병원 문화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바꾸고 병원 중심이 아닌 지역사회와 정신질환자 중심의 치료과정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당부한다.

권 교수는 “우리나라엔 폐쇄병동 수가 너무 많다”며 “감금 피해자를 없애고 정신병 환자들의 빠른 쾌유를 위해서는 병실 수를 줄이고 대신에 지역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치료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정신병원 의료 시스템이 치료진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OECD 국가의 정신병상 수의 변화추이’를 보면 1980~2000년 사이 정신병상 증가율에서 한국과 터키, 일본을 제외한 모든 국가는 감소하는 추세였다.

입원여부를 더욱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 역시 요구되고 있다.

미국 뉴욕 주의 경우 사법부가 정신병원 입원 심사 등 기타 조치 등의 명령, 결정에 관여하고 있다. 영국도 가족 및 친척이 ‘평가를 위한 입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병원에 속한 의사 2명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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