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술만 마시고 식사도 안 하세요. 요새는 일하러 가지도 않고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중년의 부인은 울먹이고 있었다. 부인의 남편 A씨는 자영업으로 꽤 성공한 사람이었다. 젊어서부터 열심히 일했던 그는 자녀들의 교육도 성공적으로 뒷바라지해서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 안정이 되자 그는 고향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도 술은 즐겨 마셨던 그였으나 항상 절제가 앞섰던 그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는 폭음을 하기 시작했다. 음주 횟수는 점차 늘어났다. 급기야 지금은 식사를 거의 거른 채 하루에 소주 3~4병을 마시고 있다. 술을 끊으려고 애를 써 봤으나 이틀이 못 가서 포기하고 말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떨리고 불안 초조해지는 금단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알코올 중독(의학적인 진단명으로는 ‘알코올 의존’이라 불림) 환자였다.

알코올 중독의 원인을 한마디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의학계에서는 개인의 유전적 또는 생물학적 요인, 주변의 사회 문화적인 요인, 음주를 시작하는 시기 및 동기, 그리고 개인의 정신병리 등이 서로 작용하여 그 결과로 알코올 중독이 발생한다고 본다. 예컨대 부모가 알코올 중독인 경우 그 자녀는 정상인 부모의 자녀에 비해 알코올 중독이 될 확률이 4배에 이른다. 또한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반사회적 성향이 강하고, 자아와 초자아의 발달 과정 이전에 즉, 만 1세 이전의 구순기적 상태에서 인격발달이 정지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한다. 이들은 욕구, 고통, 해결되지 않은 성적 충동의 좌절, 사회적 좌절감을 즉각적인 알코올의 효과로써 해결한다. 그러나 알코올의 효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라지고, 이들은 다시 불안하거나 우울해지며 아울러 적개심과 죄책감을 함께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이러한 느낌을 피하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더 많은 양의 알코올을 섭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면 알코올 중독의 증상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알코올 중독의 증상은 다양하여 일정하게 말하기 어렵다. 초기에는 주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본인도 과음을 곧잘 부인하지만, 대개 가족과 직장 동료가 환자의 과음을 가장 잘 인식한다. 환자는 점점 직업상의 능률 저하, 일상 습관의 변화, 생산성 감퇴, 지각이나 무단결석, 기분의 잦은 변동, 성격 변화 등을 보이기 시작한다. 점차 얼굴에 붉은 반점 또는 딸기코, 에스트로겐의 증가로 인하여 손바닥이 붉어지는 등의 신체 변화도 나타난다. 심해지면 지방간이 되어 간이 커지고, 빈번하게 감염 증세가 나타나며, 기억상실이 나타난다. 그뿐만 아니라 자주 사고를 당하거나 몸에 상처를 입게 되고, 음주 상태에서의 운전 또는 보행으로 인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키거나, 그 밖의 거친 행동으로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더 진행이 되면 간 기능 장애가 악화되어 황달과 복수가 나타나고, 고환이 위축되며 가슴이 여성처럼 부풀어 오르는 증상이 나타난다. 이쯤 되면 환자는 대개 실직하고 가정은 파탄에 이르게 된다.

알코올 중독은 그 자체가 정신의학적 질환이면서 또한 여러 정신과 질환들을 동반한다. 가장 흔히 동반되는 정신질환은 우울증인데 이 경우 자살 시도의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반사회적 성격장애, 양극성 기분장애(조울증), 불안장애, 다른 물질의 남용(흡연, 마약류, 수면제 등)도 알코올 중독에 흔히 동반되는 정신과 질환들이다. 알코올 중독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다. 한참 일할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 받는다면, 이는 한 가정의 파괴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 전체의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새해 들어서 혹시 금주 맹세를 했다면 꼭 지켜나가기를 바라고, 아직 하지 않은 분들은 계사년을 금주의 해로 삼기를 강력하게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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