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마루대문 - 군자의 향기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

담양의 누정과 원림Ⅰ ‘송강 정철’의 발자취 

전라남도 담양을 무대로 한 선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16세기 피비린내 나는 당쟁 속에서 선비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켰을까. 시대는 불완전했지만 완전한 도(道)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식영정ㆍ환벽당ㆍ송강정

[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식영정은 지곡리 성산의 산비탈 끝자락에 자리잡은 정자로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 소쇄원, 식영정, 환벽당은 ‘한 동네에 있는 세 명승’이라 하여 ‘일동지삼승’이라 부른다.

한편 송강 정철이 이곳에서 성산별곡을 지어 ‘송강의 유적지’로 더 알려져 있다. 송강의 성산별곡은 식영정 뒷산인 성산, 다른 말로 하면 별뫼의 사계절을 우리말로 노래한 가사인데 한자를 주로 쓰던 조선시대에 우리 국문으로 아름답게 표현해낸 작품이라 그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창계천을 사이에 두고 식영정과 마주보고 있는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가 지은 별당이다.
환벽당도 식영정처럼 송강 정철과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어느 여름날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다가 집 아래 용소에서 용이 놀고 있는 꿈을 꾸게 된다. 즉시 잠에 깨어 내려 가보니 한 소년이 놀고 있었는데 그 소년이 바로 정철이었다. 김윤제는 이런 인연으로 정철을 환벽당에 지내게 하면서 학문도 가르치고, 외손녀 사위로 삼았으며 27세에 과거급제하기까지 10여년 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 정철은 이곳에 머물며 기대승, 김인후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 학문을 배웠고 임억령에게 시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송강정은 정철이 49세 되던 해에 동인의 탄핵을 받고 물러난 후 지은 정자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촬영: 최성애 기자 / 슬라이드 편집: 임태경 기자)
*『글마루』는 전국 서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