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루」마루대문 - 군자의 향기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

담양의 누정과 원림Ⅰ 선비문화의 산실 ‘소쇄원’ 

전라남도 담양을 무대로 한 선비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16세기 피비린내 나는 당쟁 속에서 선비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이상을 어떻게 실현시켰을까. 시대는 불완전했지만 완전한 도(道)로 다스려지는 나라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지치주의 정신 담긴 소쇄원

[천지일보=박미혜 기자] 소쇄란 물 맑을 소와 깨끗할 쇄가 만나 ‘물 맑고 깨끗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치 ‘ 혼탁하고 어두운 곳에서 나와 대나무 숲이 우거진, 맑고 청량한 소리 들을 수 있는 이곳 무릉도원에 와보시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소쇄원의 입구에 서면 좔좔좔 흐르는 물소리를 독차지 하며 다소곳하다 못해 천연덕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광풍각을 마주하게 된다. ‘비가 와서 개인 뒤 부는 깨끗한 바람’이란 의미의 이 정자는 손님을 위한 사랑방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제월당은 ‘비가 와서 개인 뒤 뜨는 상쾌한 달’이란 의미로 학문에 몰두하는 공간이다.

광풍각과 제월당은 모두 송나라의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가리켜 “가슴에 품은 뜻의 맑음이 마치 비 갠 뒤 볕이 나며 부는 바람과 같고, 맑은 날의 달빛과 같다”하여 “광풍제월”이라 비유한 것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쇄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로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를 꼽는다. 특히 애양단을 지나면 나타나는 오곡문이 그러한데, 오곡문은 흐르는 물길뿐 아니라 바람의 길도 혹여 막을까싶어 짓다만 담장인 마냥 공간을 비워뒀다.

소쇄원의 주인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다루듯, 구석구석 세밀하게 자연을 배려해 정원을 만들었다. 왜 그렇게 했던 것일까. 혹시 사무치도록 그리웠을 그의 스승 정암 조광조를 생각하며 ‘하늘과 닿아있는 인간세계를 자연처럼 이치대로만 두면 절로 다스려진다’는 지치주의 정신을 자신의 공간에서나마 구현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진촬영: 최성애 기자 / 슬라이드 편집: 임태경 기자)
*『글마루』는 전국 서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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