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겨울이 되면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다고 한다. 불안감 공격성 폭력성 중독 등을 조절하고 제어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라토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라토닌은 일조량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요즘처럼 햇빛 보기 힘든 겨울이면 세라토닌 분비량이 더욱 줄어든다. 말로만 듣던 시베리아 찬 공기까지 밀려들어 우리들의 어깨를 더욱 더 움츠러들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살림살이마저 갈수록 오그라들고 있는 사람들은 더 죽을 맛이다. 직장인들도 겨울철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연말 성과급을 두둑하게 받아 기분이 좋은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고 했다.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은데도 별로 나아지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울한 소식들이 자주 들린다.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살한 사람들에 관한 뉴스가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나온다. 그중에서도 40~50대 중년 남성들의 자살과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다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 소식이 많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40∼59세 남성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수는 54.85명으로 같은 연령대 여성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수 20.17명에 비해 무려 2.7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년 남성들의 주요 자살 원인은 고단한 살림살이와 그에 따른 가정불화다. 작년 발표된 ‘자살에 대한 충동 및 이유’ 보고서에 따르면 40∼50대 중장년층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한 응답자가 52%였고, ‘가정불화’(17.3%)와 ‘외로움 및 고독’(11.0%)이 뒤를 이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가는 바람에 가족 간의 인연이 끊긴 가정도 40만 이상이라고 한다. 10년 새에 이런 가정이 16만이나 늘어난 것이다. 올해는 더 늘어 이런 가정이 45만 가구를 넘을 거란 전망이다.
남편이 집을 나간 경우가 아내보다 3배 이상이라고 하니, 중년 남성들의 자살률이나 고독사 비율이 높은 것이 결국 집을 나간 남편들의 수와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결국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이유로 남편들이 집밖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부양할 만큼 충분한 경제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 아내나 자식들로부터 무시당하거나 공격당하는 등 가정불화가 생기게 되고 이것을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나가게 된다. 집 밖에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더 큰 시련이 버티고 있다.
남성들의 경우 상황이 어려워져도 구원 요청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강박증과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적 위치에 있다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에는 정도가 더 심하다.
프랑스 문필가 앙드레 모루아는 그의 저서 <나이 드는 기술>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늙은 늑대가 존경받는 것은 먹이를 뒤쫓아 가서 그것을 죽일 수 있는 동안뿐이다. 키플링은 <정글북> 속에서 나이 들고 힘도 없어진 늙은 늑대를 따라 적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젊은 늑대들의 분노를 그리고 있다. 이 늙은 늑대 아케라가 노루를 잡으려다가 실패한 그 날이 그의 최후의 날이었다. 이가 빠진 이 늙은 늑대가 무리에서 떨어져나가자 한 마리의 젊은 늑대가 사정없이 그를 물어 죽인다.’
남자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혹독한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