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환골탈태,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했다. 민주당이 대선 패배의 아픔을 딛고 정말 혁신을 통해 명실상부한 제1야당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헛된 꿈인 듯하다. 우여곡절 끝에 비대위원장으로 문희상 의원이 합의 추대됐다. 중진급 인물이고 정치력이나 경륜에서도 크게 부족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희상 비대위 체제의 비전은 여전히 비관적이다. 왜냐하면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었던 선거를 패배로 귀결시킨 원인에 대한 엄정한 진단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설사 부각된다고 하더라도 진단에서만 끝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둘째는 문희상 비대위 체제는 당 혁신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래야 차기 당 지도부가 혁신형으로 꾸려질 수 있을 것이고, 그 동력으로 뒤늦게나마 혁신의 칼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희상 비대위 체제는 당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친노의 부활인가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취임 회견에서 “엄중한 시기에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았다.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고 치열하게 혁신하겠다.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을 더 디딘다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각오로 민주당을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골쇄신’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이대로만 된다면 민주당 혁신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아예 문희상 비대위 체제에 당 혁신의 전권을 줘도 무방하리라는 생각까지도 들게 한다.

혁신 의지나 혁신 목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혁신을 위한 근본적인 진단과 혁신작업을 무력화시키는 종양부터 잘라내지 못한다면 혁신을 해봤자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지도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당 혁신과 변화, 쇄신을 외쳤다. 문재인 전 후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민주당 혁신은 결국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말만 요란했지 혁신의 대상이 그 주체가 됨으로써 혁신의 칼날은 처음부터 신뢰를 잃고 말았다. 혁신이 동네북이 되고만 이유일 것이다.

다시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분골쇄신 등의 표현으로 당 혁신을 외치고 있다. 한명숙, 이해찬, 박지원, 문재인도 못했던 민주당 혁신을 문희상 위원장인들 가능할까. 이전보다 훨씬 권한도, 시간도 부족할뿐더러 여론의 지지도 없는 상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문희상 위원장이 무슨 힘으로 혁신을 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비주류 비대위원장은 안 된다며 박영선 의원을 내세워 경선도 불사할 것 같았던 주류 측 ‘486그룹’이 막판에 발을 뺐다. 문희상 위원장 체제라면 친노 주류의 재도약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도 드디어 총선과 대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봤을 것이다. 사실 문희상 위원장은 친노 핵심은 아니지만 노무현 정부 초대 비서실장이요, 열린우리당 의장 출신이다. 친노세력이나 주류 측에서 본다면 우군인 셈이다. 그게 절충점을 만들어 낸 셈이다.

대선 패배 직후 잔뜩 몸을 낮추고 있던 주류 그룹, 특히 친노진영은 문희상 비대위 체제로 숨통을 트고 차기 당권 경쟁에 나설 본격적인 채비를 갖출 수 있게 됐다. 게다가 문희상 위원장은 노골적으로 정치쇄신과 당 혁신의 마무리는 문재인 전 후보가 해야 한다는 말까지 취임 일성으로 외치지 않았던가. 다시 친노의 대반격이 예고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패배의 원인을 누가 진단할 것이며, 당 혁신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을 혁신한다는 것인가. 분골쇄신, 또 말잔치로 끝날 것인가. 안 되는 것은 정말 안 되는 것일까.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