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언론인

 
우리가 농경 사회를 벗어난 것은 그리 먼 옛날 일이 아니지만 그때 우리 삶을 지배했던 풍속에 대한 기억은 벌써 아스라해져간다. 길게 잡아야 반세기 이쪽저쪽이다. 그 짧은 세월에 그 때의 기억은 빛바랜 흑백 사진의 영상처럼 희미해져간다. 후기 산업 사회의 하루는 농경 사회의 1년일 만큼이나 할 일이 많고 바쁘며 쫓긴다. 그 분망함이 과거로 마음 쓸 여유를 허락하지 않으므로 얼마 지나지 않은 농경 사회의 풍속에 관한 기억의 쇠퇴가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

그때는 가난이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가난은 사람들을 무사안일하게 만들었고 그 무사안일이 사람들을 대를 잇는 가난 속에 주저 앉혔다. 부자가 되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체념에 가까운 헛된 꿈이었다.

그렇게 볼 때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 10대 강국으로 우뚝 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은 경천동지할 천지개벽, 바로 그 자체다. 그것은 우연한 기적이 아니다. ‘잘 살아 보자’고 외친 지도자의 동기 부여와 헌신, 바로 그것이 절대빈곤에서 사람들을 일어서게 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자는 제언이 나왔다. 짜릿한 슬로건이다. 첫 번째 한강의 기적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세계적으로 전무후무 할지 모른다. ‘제2 한강의 기적’은 첫 번째 한강의 기적이 충분한 토대가 돼줄 것이므로 국민적 의지와 뜻을 결집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안 될 일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발전 도상에서 폭풍우를 만나 헤매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 ‘제2 한강의 기적’이라는 슬로건이 그같이 폭풍우 속에서 헤매는 우리의 혼(魂)을 다시 한번 일깨워 부강한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이끌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있을 것인가.

다만 ‘제2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는 첫 번째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초스피드 성장의 그림자, 시행착오를 지울 수 있어야 한다. 무에서 출발한 압축성장의 불가피한 부산물이지만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 지역 불균형, 양극화, 서민 대중의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소홀히 한 정책적 시행착오는 되풀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은 새 정부의 중심 국정지표로 민생과 동서통합, 국민행복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국민복지와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중시 시책 등 세부 방안을 이미 대선 공약으로 제시해놓았다.

그렇다면 ‘제2 한강의 기적’은 첫 번째 한강의 기적을 창조하는 과정에서처럼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What-to-do, How-to-do)를 특별히 별도의 연차계획 같은 것을 만들어 추진할 것은 없어 보인다. 사실 단임제 아래에서는 그럴 시간도 없다. 박 당선인은 진정성과 신뢰, 약속의 준수를 특별히 강조하고 실천하는 정치 지도자로 정평이 나있다. 그 같은 그의 덕목과 지도력으로 이미 제시한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제2 한강의 기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아 무리가 없다.

정치는 만사다. 정치가 이념 놀이에 빠지거나 정쟁 일변도로 흐르면 국민은 분열된다. 정치가 비효율적이면 경제가 죽는다. 정치가 국가 안위를 걱정하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진다. 더 말할 것 없이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대통령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의회와 호흡이 맞지 않으면 대통령이 혼자서 매끄럽게 할 일은 많지가 않다. 따라서 국가적인 운명이 걸린 중대사와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동서통합, 국민복지, 국민행복과 같은 대명제에는 때로는 다툴 수밖에 없는 정파들일망정 초당(超黨)적인 정치력을 발휘해주어야만 한다.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면 야당에는 재앙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시대착오다. 왜냐하면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야당을 지지한 국민들도 행복해지는 것이며 그래야 야당도 건강한 국정파트너로서 신뢰를 얻고 집권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역발상이지만 그 같은 역발상이 국민을 감동시킬 때가 왔다고 본다.

남성우월주의가 사라지지 않은 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 것, 그 자체가 대한민국은 가장 진보적인 나라라는 것을 입증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대통령을 뽑은 대한민국 국민은 가장 진보적인 국민이다. 보수냐 진보냐의 개념 자체가 혼란한 나라에서 진정한 진보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또한 무엇인지를 교조적이고 헛된 이념놀이에 빠진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어떻든 국민이 51.6%의 지지로 여성 대통령을 뽑은 18대 대선은 역사에 남을 특별한 선거였다. 다른 기억은 다 희미해져도 그 기억만은 오래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가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더 말 할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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