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990년 창단된 쌍방울 레이더스와 제10구단 창단을 준비 중인 부영 프로야구단은 전북을 연고지로 내세운 점에선 비슷했지만 출발점의 분위기는 아주 달랐다. 20여 년이라는 시간적인 차이로 인해 시대적 상황과 문제인식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야구단 창단을 둘러싸고 호남이라는 지역적 상황에 대해 시대적인 인식이 바뀐 것이다.

한국야구 위원회(KBO)는 1989년 신생팀 ‘제8구단’ 창단을 결의하고 희망 기업을 선정하려했다. 신생팀의 연고지는 전라북도 지역으로, 홈 경기장은 전주 야구장으로 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KBO의 계획은 출발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호남 야구의 균형적 발전을 모색하려던 KBO의 제8구단 계획은 당시 전라도 지역 연고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와 호남 지역팬은 물론 정치권으로부터도 심한 반발을 샀다. “호남팀을 약화시키고 분열시키는 결정이다” “5공 정부에 반감을 갖고 있는 호남을 찢어놓으려는 대표적인 스포츠 정책이다”라는 등의 말들이 쏟아졌고, 호남지역에서 각계의 반대서명운동이 펼쳐졌다.

군부쿠데타로 득세한 전두환의 5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민들의 불만을 스포츠로 해소시키기 위해 프로축구와 함께 출범한 프로야구는 해태 타이거즈가 월등한 전력으로 승승장구하면서 5‧18 민주항쟁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호남인들에게 ‘한풀이 마당’을 마련해주었다.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선동열 등 출중한 선수들을 거느린 해태 타이거즈는 연고지인 호남지역을 비롯한 서울, 인천, 부산, 대전 등지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안하면 전북 구단 창단 계획은 잘 나가는 해태 타이거즈의 전력을 약화시키며 호남 지역을 갈라놓는 것이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KBO의 전북구단 창단계획도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당시 경상도에 삼성 라이언즈, 롯데 자이언트 2개 팀이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참가했으나 전라도에는 광주일고, 군산상고 등 야구 명문고를 중심으로 야구 열기가 높았지만 해태 타이거즈 한 팀만 있었다. 따라서 동서 간 야구팀 균형을 맞추고 프로야구리그의 폭넓은 운영을 위해 전북에 야구팀을 창설하자는 게 KBO의 복안이었다.

KBO는 호남 지역팀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 속내의와 메리야스로 성공한 전북 향토기업인 쌍방울 그룹에서 제8구단을 창단토록 허가하고 당시 전라도 지역 연고팀이었던 해태 타이거즈로부터 전북 연고권을 구입하도록 했다.

창단과정에서 전북 기업인 미원그룹과 컨소시엄 형태를 이루었던 쌍방울그룹은 미원그룹이 빠지게 되면서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라는 이름으로 제8구단을 정식 창단하고 1년간은 2군 리그에서 경기를 치른 뒤 1991년부터 정식 프로야구팀으로 승격돼 1군 정규리그에 참가했다. 1996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뒤 정규리그 2위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킨 뒤 창단 첫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쌍방울 레이더스는 모기업인 쌍방울 그룹이 IMF사태로 심각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 2000년 해체를 선언했다. 이에 때맞춰 SK 그룹이 야구단을 창단하게 되면서 대부분의 쌍방울 선수들이 자유계약 선수형태로 SK 야구단으로 고용승계가 이루어졌다.

지난해 제10구단 창단설이 불거지면서 전북 야구팀 창단이 20여 년 만에 다시 프로야구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쌍방울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쌍방울 창단 때 거센 반발을 보였던 호남 정서가 이번에는 부영 야구단의 창단을 국민적 통합이라는 시대적 명분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20년 전과는 입장이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다. 해태 타이거즈를 인수한 기아 타이거즈는 프로야구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전북 연고권을 선뜻 내줄 방침이며, 호남 팬들도 전북 야구팀의 창단을 적극 찬성하고 있다.

제10구단을 놓고 수원을 연고로 내세운 KT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재계 서열 30위의 중견 건설업체 부영은 전북도민 등으로 구성된 전북 야구단 유치위원회의 지원과 전주 야구장과 군산 야구장 등의 지역 인프라, 그리고 회사 오너 측의 확고한 창단의지를 발판으로 삼아 7일 KBO에 제10구단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오면서 전북 야구단 창단문제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질시와 냉대’에서 ‘뜨거운 껴안기’로 바뀐 호남인들의 전북 야구단 유치가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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