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병환(왼쪽) 씨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포즈를 요청하자 아내 김영자(오른쪽) 씨가 석 씨의 손에 말없이 손을 얹고 활짝 웃었다.ⓒ천지일보(뉴스천지)

노장 마라토너 석병환 씨 인터뷰

 

뜀이 맺어준 인연
‘송글송글’ 땀 흘리며 달려
 대자연과 호흡하는 마라톤
 발 맞추는 동료는 ‘내 가족’

 병도 이겨낸 열정
 마라톤 생각하면 심장 ‘두근’
 나흘 연속 참석해 주변 놀라
‘가족’ 완주할 수 있는 힘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내년에도 마라톤을 할 거예요. 꿈과 희망이 있으니 계속 시도해요. 마라톤을 함께하는 한 사람들은 다 한마음이 됩니다. 천둥번개 칠 때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듯 마라톤에서는 너나없이 하나가 되는 것이죠.”

82세의 노장 마라토너.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66세 이후 387번의 마라톤 완주 최고령자. 100㎞ 울트라마라톤 대회 완주 70대 세계최고기록(비공식) 보유자. 청계산 다람쥐. 석병환 씨를 설명할 수 있는 문구들이다. 폐암, 전립선비대증, 허리디스크, 파킨슨병 등 여러 병을 앓아낸 몸으로 뛰었다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기록들이다.

◆마라톤과 함께 온 국민이 ‘힐링’하길
석병환 씨를 한파가 몰아닥친 지난 연말 양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옆은 연신 온화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아내 김영자 씨가 함께했다.

석병환 씨는 추운 날씨와 파킨슨병 때문에 마라톤을 쉬고 있었다. 하지만 날이 풀리고 몸이 회복한다면 언제라도 나갈 기세다.

그가 마라톤에 열광하는 이유는 마라톤 현장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아내 김영자 씨는 늘 마라톤 대회장을 따라다니며 그의 땀을 닦아줬다. 가족은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석 씨에게는 또 하나의 가족이 있다. 그는 마라톤 참가자들을 ‘가족’이라 불렀다. 함께 뛰며 땀을 흘리고 서로를 챙겨주는 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은 든든한 가족이다. 석 씨는 가족을 통해 건강한 마라톤을 해낼 수 있었다. 마라톤을 통해 ‘힐링’을 한 것.

“함께 뛰면 그 순간 전부 다 아들들이 됩니다. 마라톤으로 하나가 된 것이지요.”

그는 2남 3녀, 5남매나 둔 아버지이지만 마라톤 대회 참가자 모두를 아들딸로 삼았다.

그중에는 아버지 모시듯 석 씨의 건강을 챙기는 사람도 생겼다. 석 씨는 “함께 뛰는 정형외과 의사 이병두 씨는 거의 내 주치의 노릇을 한다”며 “폐암으로 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병원에서 나이가 많아 수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병두 씨가 병원에 조언을 해줘서 폐암수술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그가 여러 병마와 싸워 이기며 강한 정신으로 마라톤을 해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러한 마라톤 가족이 만들어준 사랑이었다. 병이 올 때마다 이기고 쉼 없이 마라톤 코스를 달려왔다. 때로는 숨이 턱까지 차올라 더 이상 뛸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숨이 멎을 것 같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한 적은 없어요. 가족과 마라톤 동료들을 떠올리며 결승선에 들어왔어요.”

그는 마라톤을 열망하는 마음을 알아준 마라톤 동료들이 보여준 우정과 가족의 사랑을 떠올렸다. 1999년 처음 마라톤을 할 당시엔 횟수가 많지 않았다. 2002년 들어 마라톤 붐이 불며 석 씨는 주 3회 이상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한 번은 연달아 4일째 마라톤 대회를 나가려고 준비했죠. 그랬더니 큰아들이 와서 저를 차에 태우고 곧장 대회장을 빠져나왔어요. 꾀를 냈어요. 마라톤이 진행되고 있는 골목으로 아들이 차를 몰고 가게 만들었죠. 마라톤 동료들이 그 모습을 보고는 달려와서 ‘왜 안 뛰셔요, 어서 뛰셔야지요, 함께 가요’라며 성화를 부렸죠. 결국 아들은 빈 차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웃음).”

그의 얼굴은 당시 효심 가득한 아들의 마음과 동료들의 마음이 한꺼번에 느껴지는지 행복감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 지난 2005년 10월 3일 열린 국제평화마라톤축제에 참가한 석병환 씨가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마라톤 코스를 지나고 있다. (사진제공: 석병환 씨)

 

◆400회 완주를 향한 질주… 가족들 믿음 변함없어
석병환 씨는 요즘 마라톤을 하지 못해 애간장이 녹는다. 어서 빨리 다시 뛰어서 13번의 마라톤을 채워 400회 기록도 달성하고 싶다.

석 씨 가족들은 석 씨가 마라톤 400회를 꼭 완주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 믿음은 다시 석 씨에게 기운을 돋워준다.

아내 김영자 씨는 “꼭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석 씨가 “항상 뛰어다닌다. 달리는 감을 잃어버릴까봐 걸어 다니는 법이 없다”며 다시 뛸 준비가 늘 돼 있다고 강조했다.

장남 석승규 씨의 논문에서도 아버지를 향한 믿음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2012년 11월경에 제출할 논문을 마치며 작성한 소감문에서 “제게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주시기 위해 몸소 고령에도 400회 마라톤을 완주하며 모범을 보여주시고 병고를 이겨내신 아버님”이라고 석병환 씨에 대해 기록했다. 석 씨는 파킨슨병이 재발해 현재 마라톤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승규 씨는 아버지가 반드시 병환을 이겨내고 400회 마라톤 완주를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미리 논문에 내용을 담았다.

석병환 씨의 두 아들 승규 씨와 용규 씨는 둘 다 직업군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강한 정신교육을 받았다. 엄동설한이 와도 어김없이 아버지를 따라 매일 아침 4~5시 사이에는 산에 올랐고, 냉수욕을 했다. 엄격한 교육을 통해 석병환 씨가 자녀에게 가르친 것은 효(孝)다.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라 효(孝)만능주의가 되면 좋겠어요. 효는 사회의 근본, 바탕이 될 수 있으니 효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죠. 사람이 태어나서 부모를 모르면 안돼요. 부모에게 효를 행하면 국가에는 자연스럽게 충성하게 돼 있는 것이죠.”

승규 씨와 용규 씨는 둘 다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작은 아들 용규 씨는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둘은 현재 영관급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석 씨는 지난 2003년 11월 (사)한국효도회로부터 ‘장한어버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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