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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발자취를 따라’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Ⅱ ‘낙서재와 동천석실’

‘어부사시사’ ‘오우가’로 이름을 떨친 고산 윤선도. 하지만 그는 우암 송시열과 함께 당대 최고의 정치가였다. 남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는 선비의 절개를 올곧이 지키며 정치적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3차례 20여 년간 귀양살이를 하게 되는데…. 동시에 실학사상이 대두되기 전부터 그는 실용학문을 익히고 직접 현실세계에 접목하면서 혁신가로서의 면모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 결정체가 바로 전남 완도 보길도와 진도 굴포마을의 간척지다. 이제 우리는 문학인 고산 윤선도가 아닌 정치가이자 혁신가인 고산 윤선도의 정신세계에 들어가 보자.

 

 

글과 하나되는 즐거움을 느끼다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글을 자유자재로 즐길 줄 알았던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 터를 잡으면서 거처를 ‘낙서재(樂書齋)’라 지었다. 그는 풍류가로서 그 면모를 거처에도 살짝 심어놨는데 바로 낙서재가 있는 마을이 부용(芙蓉)이다. 진흙탕 속에서도 고고하게 핀 연꽃에서 글을 즐기니, 참으로 멋진 고산이 아닌가.

그러나 정작 그가 글을 즐긴 곳은 낙서재와 마주보고 있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이다. 홀로 올라가 그곳에서 부용동을 내려다보며 학문의 즐거움을 느끼니 그야말로 정치적 실연을 승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동천’은 ‘하늘과 통한다’라는 뜻이요, 학문은 결국 태평성대를 위한 수단이니 결국 하늘의 이치와 통하여 요순시대와 같이 태평성대를 이루고 싶은 고산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사진촬영: 이승연 기자 / 슬라이드 편집: 손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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