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나라는 천하 통일의 업적으로 거국적인 축하연을 베풀고 전국의 모든 무기들을 거두어 들여 한곳에 모아 녹여서 무게 천 석(23톤)의 종과 동상을 만들어 궁중에 안치하고 도량형과 서체와 마차의 폭도 통일했다. 그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진나라의 영토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조선과 서쪽의 임조, 강중, 남쪽의 북호, 북쪽은 황하를 기점을 잡아 음산 산맥을 따라 요동에 이르는 장성을 쌓아 그 지배 세력을 굳혔다.

시황제 34년(기원전 213) 함양궁에서 주연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박사 복사인 주청신 등이 시황제의 위대한 덕을 찬양하자 제나라 사람 순우월(淳于越)이 앞으로 나아가 이렇게 건의했다.

“은나라와 주나라 왕조가 천여 년이나 번영한 것은 왕자나 공신을 제후로 봉하고 왕실을 방패로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천하를 장악하고서도 왕자들께서는 모두 일개 평민으로 있습니다. 장래에 제나라의 전상이나 진나라 육경의 본을 따른다면 제국을 보전하겠습니까? 무엇이든 옛 일을 교훈으로 삼지 않고 잘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청신 등은 폐하의 비위를 맞추며 폐하께서 잘못을 저지르게 하고 있습니다. 정말 불충불한 신하들입니다.”

시황제는 이 문제를 정위 이사에게 답하라고 명령했다.

이사는 순우월의 의견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옛 시대에는 천하가 몹시 흩어졌는데도 이를 통일하는 자가 없어 제후들의 난립을 초래했던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모두가 옛날의 세상을 이상으로 생각하고 현세를 비판했고 저마다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여 현실을 혼란시키며 자기주장이 옳다고 하여 위정자를 비난하는 것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폐하께서 천하를 통일하고 사물의 가치 기준을 분명히 했으며 또 황제라는 지위에 올라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저마다 자기 의견이 옳다는 자가 여전히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폐하께서 정하신 법을 비난하고 포고를 내려도 비난하며 나아가서는 그 불만을 거리로 나가서 제멋대로 선동합니다.
또 그들은 폐하의 어명에 이의를 나타냄으로써 그것을 기회로 헛된 명예를 얻으려고 무리를 이루어 비방으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같은 무리를 방치한다면 머지않아 폐하의 권위를 손상시킬 것입니다. 즉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학술, 시서, 백가의 저서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서 모두 거두어들여 불태워야 합니다. 가져도 좋은 것은 의약과 복서, 농사에 관한 서적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문을 좇는 자의 스승은 관리가 대행하게 합니다. 이것이 저의 계획안입니다.”

시황제는 이사의 상소를 허락하고 시서, 백가의 저서를 샅샅이 몰수하여 불태우고 우민 정책을 추진하면서 비판하는 자들을 구덩이를 파고 묻어버렸다.

법제나 율령의 제정도 시황시대에 처음으로 행해졌다.
시황제는 또한 공문서를 규격화하고, 각지에 화려한 이궁과 별궁을 지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나라 안의 각지를 순행하면서 사방의 야만족을 토벌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이사가 지휘를 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