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원 시인, 작곡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성급하게 남을 판단하면서 자신의 내면적 성찰은 소홀히 할 때가 많은가? 본질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비본질적인 것에 더 마음을 쓰고, 내적인 것보다는 외적인 것들에 더 마음을 빼앗기며 시간을 보내는 적이 많지 않았는지 스스로 반성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내 방의 벽 위에 새로운 마음으로 새 달력을 걸어본다. 내 마음의 벽 위에도 ‘기쁨, 소망, 사랑’이란 달력을 걸어놓고 날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싶다. 이 외로운 지구별에서 소풍 잘 하다가,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한다. 아직도 지금 이 순간, 숨 쉬는 지금이야말로 스스로 나무가 되고 싶다.

운전에 신경을 쓰다 보면 주위 경치를 놓칠 수 있어 나는 대중교통을 선호한다. 덜컹거리는 시내 시외버스라도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좋았다. 취재 여행 중 흔히 목적지를 못 찾거나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막막해지면 나는 가장 가까운 읍면사무소나 파출소(치안센터),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 들어가곤 한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내가 자원봉사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이미 자원봉사의 의미는 잃어버리게 된다. 받아서 감사하고, 주면서 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마음의 마음을 비우는 훈련이 필요한 요즘이다.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한 단어 끝마다 긴 쉼표를 찍으며 어머니에 대한 흑백의 필름이 돌려졌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옛 추억을 되살리려 자주 깊고 긴 호흡을 해야만 했다. 되돌아보면 눈물 젖은 떡을 참 많이도 먹었다. 산다는 일이 외롭고 쓸쓸하고 너무나 가난해서 아무도 모르게 울고 또 울었다. 시장에만 가면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고 부러운 마음에 떡이 목으로 안 넘어갔다.

아무리 만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도 집에 오면 언제나 혼자이듯이 무엇인가 빠져있다는 느낌에 허무하고, 허전하고 참으로 부질없고 허탈하기만 했다. 돈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뒤늦게 깨닫고 있다. 잘 나가는 정치인이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장 높이 있을 땐 추락할지도 모르니 빨리 내려오는 것이 최상책일 것이다. 살아 있는 우리를 수시로 유혹하는 성공과 출세, 행복 모두 돈과 직결되어 있지 않는가? 기준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돈이 너무 많으면 동물처럼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기는 더욱 어렵다. 큰돈이 생기면 사람의 정신이 자동적으로 흐트러지게 마련이다.

돈은 대단한 힘을 가졌지만 돈이 주는 편함에는 영혼이 치러야 하는 고통도 있다. 돈이 행복을 보장해줄 줄 알았는데 막상 돈이 생기면 불행도 같이 따라온다는 이치는 잘 모른다. 돈이 주는 안락함에는 반드시 해악이 따르는 것이 세상살이가 아닌가? ‘성공하니 정말 살맛나더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았으나, ‘성공하니 정말 무섭더라’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큰 재물이 구도에 방해가 되는 것을 깨닫고, 재물을 모두 배에 싣고 호수로 나가 물속에 다 빠뜨려 버렸던 중국 당나라 때 도인 방거사가 생각난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희망적으로 풀어내는 행복의 열쇠를 가진 사람이 살아갈수록 그리워지고 보고 싶어진다. 나는 지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빈 집에서 손수 연탄을 갈며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주로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지만 가끔 밤에 촛불을 켜고 책 보는 재미가 큰 즐거움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고 사색할 시간도 필요하다. 남아 있는 주어진 시간을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 보니 그리 필요한 게 많지 않았다. 난 2평 정도의 잠자리에 하루 한 끼로 된장만 먹으면 된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 난 이 세상에서 갖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 나는 고승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다. 황혼기에 접어드는 평범한 전업시인이다. 삶의 안락함보다는 충만함을 몸으로 만끽하는, 그래서 정신과 영혼이 함께 풍요로운 사람이다. 이 세상에 갖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아 탈이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아닌가. 마음의 마음을 완전히 비우기 전에, 아니 숨을 멈추기 전까지 사람에게 어떻게 갖고 싶은 것이 없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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