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용의 해가 지나고 뱀의 해가 밝았다. 뱀은 다산과 지혜의 상징이다. 동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활약할 올 해의 괘를 뽑았더니 지뢰복괘(地雷復卦☷☳)가 나왔다. 이 괘는 순음괘(純陰卦)인 곤괘(坤卦:☷☷)에서 연역되었다. 계절로는 동지를 지난 시점이다. 음이 극에 이르면 양이 생성하여 지뢰복괘로 변한다. 5개의 음효가 짓누르고 있지만 우뢰처럼 강력한 양효가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기세이다. 복괘의 초구 효사는 ‘불원복(不遠復). 무기회(无祇悔), 원길(元吉)’이다. ‘머지않아 돌아온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크게 길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새 대통령은 33년 만에 60세가 넘은 나이로 청와대로 복귀한다. 그 자신은 여성으로서의 개인적인 삶을 모두 포기하고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정계로 진입하여 경륜을 쌓았다. 이제 지난날에 대한 회한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야 한다.

복괘의 상괘는 땅을 의미하는 곤괘(坤卦☷)이며, 하괘는 우뢰를 의미하는 진괘(震卦☳)로 우뢰가 땅속에 있는 형상이다. 음양이 충돌하면 우뢰가 발생한다. 복괘의 유일한 양효인 초구(初九)는 강한 재질을 지닌 새싹을 의미한다. 새싹은 미약하여 우뢰를 일으키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싹이 트기 시작한 양기는 안정된 상황에서 잘 길러야 한다. 잘 기른 양기는 점차 자라서 하지에 이르면 가장 장대하게 된다. 옛사람들은 동지가 되면 침상에 조용히 누워 양기를 길렀다. 동지가 지나면 땅 속에 잠복했던 양기인 우뢰가 움직이기 시작하므로 겨울잠을 자던 모든 생명이 놀라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움직임이 곧 양기이다.

내괘인 진괘가 자기이다. 땅 속의 우뢰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속성은 동적이다. 다만 아직은 처음 일어난 유약한 양에 불과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움직일 수 없다. 아주 미미하고 작은 움직임으로 상황에 적응해가야 한다. 움직임을 크게 하다가는 다칠 가능성이 더 높다. 초구의 효사에서 ‘불원복’이라 한 것은 가더라도 멀리 가지 않고 곧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마치 정찰병의 행동과 같다. 멀리 가지 않았으므로 무리를 하여 달리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러므로 움직임도 지나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외괘인 곤괘는 진괘의 활동 대상이다. 곤은 지극히 고요함의 본체이이다. 대상이 움직이지 않으므로 그의 동정을 파악할 수 없다. 느낌으로나 합리적으로나 의심을 품을 만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대상의 상황을 정찰하는 목적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으로 느낌이나 이치에 부합되면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으며, 이러한 판단을 기준으로 삼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정도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새 대통령이 상대할 노회한 사람들은 이러한 일상적인 인식을 참고로 도회지술(韜晦之術)을 발휘한다. 자칫하다가는 음모와 계략에 넘어간다. 초구의 효사를 대상의 입장에서 보면 겉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몰래 되돌아와 공격한다는 의미이다. 초구인 양효는 미미하고 작은 움직임을 의미하므로, 내가 철저하게 대상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상이 멀리 가지 않고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으므로 철저한 수색을 하지 않으면 반격을 받게 된다는 경계의 의미이기도 하다. 복괘의 일양은 순음에서 복괘로 전환되는 매개체이므로, 복괘에서 벌어질 일을 가리키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곤괘에서는 6개의 효가 모두 음이지만, 복괘에서는 5개의 효가 음이고 1개의 효는 양이다. 그 차이는 초효 하나 밖에 없다. 괘의 형태를 보면, 초효는 가장 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산골짜기의 풀덤불이나 무성한 숲의 깊은 곳을 상징한다. 음효는 정(靜), 양효는 동(動)을 주관한다. 양효인 복괘의 초구는 동을 상징하므로 산골짜기에 있는 풀덤불이나 숲속의 깊은 곳까지 자세히 수색하면 음의 무리들 사이에 숨은 대상의 종적을 찾아낼 수 있다. 상대의 정황을 알아내려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수색’, 있는 것을 알고 그 상태를 자세히 알아내는 ‘정찰’, 스파이를 파견하여 아군의 이목(耳目)으로 삼는 ‘첩보’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취임하기 전 대통령에게는 남다른 전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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