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여자 탤런트의 죽음이 연예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로 불리는 이 사건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연예계의 치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 장자연 사건을 계기로 연예계의 관행인 ‘노예계약서’ 문제가 불거졌고 한 연예인 노조단체의 조사를 통해 연예인 성상납 실태가 세상에 알려졌다. 언론에서는 연예계 전반에 뿌리내린 구조적 모순들을 지적했고 정치권에서는 연예매니지먼트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등 연예계의 고름을 짜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2월 탤런트 장자연 씨가 성상납 등의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자살하자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조(이하 한예조)는 소속 연예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충격적인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의 11.5%가 ‘본인 또는 동료가 성상납을 강요받았다’고 답했고 20.7%가 ‘접대를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때 받는 피해의 경우에는 ‘캐스팅 불이익’이 50.7%로 가장 많았다.

동국대 유지나 교수는 7월 6일 열린 국회인권포럼 ‘연예산업의 취약한 구조와 인권’에서 “고 장자연 씨의 문건은 한국사회에 공표된 현 사회의 여성인권 유린 현장을 상징한다”며 “거기서 밝힌 성상납은 음지에서 이뤄진 구조적인 여성 연예인 인권유린의 현장을 폭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방송사와 연예기획사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연예인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노예계약서’가 있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6월 8일 총 20개 중소형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 230명의 전속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과도한 사생활 침해조항, 직업선택자유 침해조항, 홍보활동 강제 및 무상 출연 조항 등 8개 유형 91개의 불공정 계약조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사된 전속계약서 모두에서 1개 이상의 불공정계약 조항이 발견된 것이다.

제대로 된 규모와 조직을 갖추지 못한 채 연예기획사가 우후죽순처럼 난립하는 문제도 연예인의 인권을 위협하는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추산에 따르면 연기자 관련 연예기획사만 해도 150~200여 개에 달하지만 대부분 신인 한두 명만을 관리하는 영세한 업체로 알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연예계 전반의 취약한 산업구조와 불투명성에서 발생하는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3월 25일 관련법을 강화하는 내용의 연예매니지먼트사업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골자는 연예매니지먼트사업 희망자가 인적·물적 요건을 갖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등록하도록 한 것이다.

또 공정거래위원회는 7월 8일 연예인의 사생활 침해 금지 등 인권조항이 강화된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두 종류로 된 이 계약서는 연예인에게 불리한 장기계약을 할 수 없도록 계약 기간에 제한을 두고 연예인의 사생활보장과 인격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에 대해 한예조 문제갑 정책위원장은 “새 표준계약서에서 인권침해 조항이 빠지고 연예인과 소속사가 대등하도록 했다”며 “내용적으로 봐서 미흡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표준계약서를 만든 것이 처음 있는 일이라 대승적 차원에서 동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예인 인권보호를 위해 제도적인 개선보다 더 시급한 사실은 연예인이 순수하게 실력과 재능으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되도록 연예계의 토양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지나 교수는 “연예인이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실력으로 크고 스타가 되는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며 “아울러 여성 연예인도 성형이나 성상납과 같은 방식을 극복하고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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