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모르는 우리네 전통문화의 소중함

▲ ⓒ뉴스천지

각 민족에게는 그들만의 고유한 생활양식과 풍습, 먹을거리 등이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공통된 양식을 습득한 하나의 민족으로 만드는 이러한 것을 통틀어 우리는 ‘문화’라고 부른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우리만의 고유한 문화,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이 ‘전통문화’가 지금 공격을 받고 있다.

그것도 우리들에 의해서 말이다. 민족의 뿌리를 알게 하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끄는 우리네 문화유산은 지금 어떤 위기에 처해있는가. 그렇다면 대처방안은 없는지 모색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라 할 수 있다.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아야 타 문화도 수용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유산에 8건의 문화유산이 등재되어 있을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과 건축물 등 전통문화의 위대함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도 주목하고, 세계인도 인정하는 우리네 전통문화이지만 정작 그 소중함과 위대함을 우리만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르는 것도 아니다. 전통문화의 소중함을 알고는 있지만, 그 가치를 인정하고 보전하려는 것에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이 오히려 옳은 표현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는 있지만, 우리 것이기에 왠지 구식(舊式)일 것 같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은 아닌가 한다.

세계 속에 빛나는 우리네 문화

세계가 인정하는 우리의 문화유산 중 최고봉은 다름 아닌 ‘한글’이다. 한글학회 김승곤 회장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은 글자도 간단하고, 모양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쓰기 쉽고, 배우기 쉬워 사용하기에 좋은 글자”라고 자랑스러워 한다.

저명한 문자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영국의 샘슨(G. Sampson: Sussex대학 인지 컴퓨터학부) 교수는 “한글이 세계 인류가 성취한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했다.

미국의 다이아몬드(J. Diamond: 로스앤젤레스의 캘리포니아 대학 의과대의 생리학자이자 퓰리처상의 수상자) 교수는 미국의 저명한 과학지 ‘Discover(1994년 6월호)’의 기고문에서 “세종이 만든 28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알파벳’이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표기법 체계’”임을 확인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분석 기술한 바 있다.

한글뿐만이 아니다. 우리네 전통가옥인 한옥 또한 그 가치를 인정받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이자, 예술작품이다.

독일인 한국학 박사 1호인 베르너 삿세(Werner Sasse, 69) 교수는 “한옥은 안과 밖을 연결시켜 자연과 하나 되면서 동시에 과학적으로 만들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었습니다”라며 ‘한옥예찬론’을 펼친다. 삿세 교수는 그의 한옥사랑, 한국사랑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한옥이 많이 들어선 담양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상처받는 문화유산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종종 볼썽사나운 일들이 벌어지고는 한다. 얼마 전 잘 관리되고 보존돼야 할 국가지정문화재가 경매에 오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현충사 내 이순신 장군의 고택 부지 등에 대한 경매로,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만 200여 명이 넘었다.

이순신 장군 고택 부지 경매는 덕수이씨 풍암공파에 의해 11억 5000만 원에 매수 됐다. 이와 같이 국가지정문화재가 경매 물건으로 매수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998년 중요민속자료 233호로 지정된 아산 건재고택(建齋古宅)이 금융계 재벌로 알려진 저축은행 아들의 명의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이처럼 한국 고유의 문화재들이 문화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돈 많은 사람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문화재가 개인 재산이기에 앞서 국민 모두의 재산이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인사동 골동품 거리가 모두 철거되면서 이제는 정말 한국의 옛것을 보기가 어려워질 위기가 오는 것은 아닌지 자못 걱정된다.

문화기관의 한 대표는 공예의 거리라고 하는 인사동이 값싼 외국 물건들로 넘쳐나고, 전국의 모든 관광지에 그저 그런 물건들이 똑같이 놓여 있다며, 근본적인 고민과 본격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라고 느낀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결과는 근본적인 고민이 아닌 전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모양새로 갖추어지고 있다. 없어지고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다시 살려내도 모자랄 판에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우리의 전통을 사정없이 없애고 있는 현 세대는 과연 한국 전통 보존에 대해 논의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오랜 세월 풍파에 시달린 한옥에 보수와 정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옛 선조들의 생활양식에 맞게 지어지다 보니 현대인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전통을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 그 안에는 우리의 역사와 우리 민족의 지혜, 생활양식 그리고 그 시대의 문화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독일 보쿰대학과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을 독일어로 번역해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는 베르너 삿세 교수는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왕과 동시에 위대한 시인이자, 한국문화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독보적인 인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현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한자(漢字)를 모르고, 더 나아가 민족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근간이 되는 고대문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선조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알고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학과 문화에 대해 한국인들보다 더 많은 애착을 갖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통’을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앞서 말한 바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다. 옛것을 지키고 보존할 때에 새로운 것도 받아들일 수 있고, 옛것과 새것이 공존해 새로운 문화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것은 낡고 불편한 것이라는 생각과 사대주의(事大主義) 사상을 버려야 한다.

무조건 다 철거하고 없애버려 그 위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지만 깨끗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언제라도 자신들의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후손에게 텍스트로나 사진으로만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무조건 바꾸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조금 불편해도 보수하고 다듬어 우리네 소중한 전통을 지켜가기 위해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의 의식전환이 절실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국민과 정부가 전통의 소중함을 인식할 때에 비로소 대한민국이 정체성을 찾게 될 것이다.


 

 

 

 

한옥 지켜낸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 씨 인터뷰

▲ 피터 바돌로뮤 씨. ⓒ뉴스천지

“보존가치 있는 한옥, 왜 철거하려 하나요?”

최근 재개발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동소문동6가 일대의 한옥을 1년 7개월 간의 법정투쟁 끝에 지켜낸 이가 있어 화제다.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61) 씨. 1968년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왔을 때 머물던 99칸짜리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인 강릉시 선교장에 매료돼 곧바로 한국에 정착했다.

그 후 1974년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동소문동6가 소재 한옥에서 35년째 살고 있다. 한옥에 대한 예찬론과 함께 이번 승소판결에 대한 생각도 들어볼 겸 만난 그는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집 앞 골목에서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해 그동안의 설움을 토로했다.

재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행정서류를 조작한 사실을 조목조목 증거를 보이며 설명하는 그에게서 한옥을 지켜내기 위한 노력과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재개발 조건이 20년이 지난 건물 중 노후·불량 건축물이 60% 이상이 되었을 때”라며 “이 일대를 개발하기 위해 2006년에 지은 4층 빌라(177번지)를 1982년에 지은 노후불량 2층 양옥으로 둔갑시키고, 2003년도에 확장 공사한 아리랑고개 부근 건물이 이미 철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거해야 할 건물이 있는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60.73%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고 설명했다.

가짜 서류와 불법이 난무한 행정절차에 대해 일침을 가한 그는 “변호사를 통해 조사를 시작했고 곳곳에서 불법을 발견하게 됐다”며 “주민 3분의 2의 동의가 있어야지만 조합에서 재개발구역지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그 절차도 생략하는 등 많은 것들이 불투명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문화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한옥을 정책적으로 철거하려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30년 전만 해도 서울에 한옥이 80만 세대였는데 재개발사업으로 인해 이제는 만 세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며, 정작 한국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옥은 가장 자연적이면서도 생태적인 것을 소재로 한 천연주택”이라며 한옥예찬론을 펼친 그는 “집주인의 사고방식과 지방색, 시대에 따라 다양한 멋을 느낄 수 있는 한옥은 건축과 실내장식, 공예, 고미술, 문학 등이 혼합된 예술작품과 같다”고 강조했다.

경제개발이 우선시 되던 때에 한옥이나 초가집을 헐고 무조건 새로 집을 지었던 것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획일적으로 재개발 구역을 지정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군대식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한옥에 살고 싶어 하고 지키고 싶어 해도 나라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며,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어 “한국의 전통건물도 문화유산만큼이나 중요하다. 한국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을 잘 보존하고 가꿔나가야 한다”며 문화와 역사를 통해 한국 민족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여러 문화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

현재 해양조선업 관련 컨설팅회사(IRC) 부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선행을 베푸는 것에도 익숙하다. 그가 손수 손보고 가꾸어온 한옥에는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함께 산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숙식은 무료다. 이뿐 아니다. 그는 의장대를 지원하고 있어 여름이면 그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그렇게 베풀며 살아온 지도 벌써 24년이 넘는다.

사심 없이 그저 한국이 좋고, 한국문화가 좋아 재개발을 막으면서까지 한옥을 지키려 하는 피터 바돌로뮤 씨. 그렇지만 마을 주민들이 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주기까지의 길은 아직도 멀고 험한 것 같다. 판결이 승소됐지만 아직도 재개발을 추진하는 마을 주민들이 있어 그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그에게는 넘어야 할 관문이 하나 더 남았다. 이번에 서울시를 상대로 동선3주택재개발정비구역 지정 처분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얼마 전 서울시가 항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