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나라 왕 정이 한나라 위, 조, 초, 연, 제나라 등 여섯 나라를 평정하고 마침내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 그는 승상과 어사대부, 정위인 이사를 불러놓고 왕의 호칭 변경에 대해 의견을 물었다.

세 사람은 똑같이 태황으로 불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자 왕은 태황의 ‘황’을 취하고 상고의 ‘제’와 합하여 ‘황제’로 칭한다고 말하며 다른 것은 신하들의 뜻이 좋다고 했다.

그 결정은 정식 절차를 밟아 바로 시행되었다.

황제의 죽은 아버지 장양왕에게는 태상황이라는 칭호를 추종하고 다음과 같은 황명을 내렸다.

“짐이 아는 바로는 태곳적에는 호는 있었으나 추서되는 이름이 없었다. 중곳적에는 호 이외의 추서되는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신하가 군주에게 평가를 내리고 결과가 되며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제도는 앞으로 폐지한다. 그리고 짐은 최초로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시황제’라 칭한다. 짐의 뒤에는 순차에 다라 이세, 삼세라 칭하고 이를 천만 세 뒤까지도 무궁하게 전하는 것으로 정한다.”

이어서 승상 왕관이 아뢰었다.

“이제 제후들을 멸하고 천하 통일을 이루었지만 연, 제, 초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왕을 두지 않으면 완전히 장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여러 황자를 왕으로 봉하여 그 임무를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황이 이 의견을 조정의 대신들에게 내놓자 모든 신하가 찬성을 하였으나 단 한 사람 이의를 제기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정위인 이사였다.

그가 앞으로 나섰다.

“주(周)나라 문왕, 무왕은 많은 왕자나 왕족을 봉했지만 그들은 대를 거듭할수록 혈연 의식이 희박해지고 서로가 마침내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후 간의 싸움에 이르러서는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나라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다행히 이제는 폐하의 위대한 덕으로 천하가 통일되었고 군, 현으로 편성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 황자나 공신에게는 국고에서 충분한 보수를 하사하시는 것이 지당한 줄로 압니다. 국가의 통제를 보전하면서 인심의 이반을 막는 것이야말로 치안 유지의 중점입니다. 이제 또 다시 제후를 봉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받아 시황이 말했다.

“천하의 만민은 계속되는 전쟁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 대부분의 원인은 제후들 때문이었다. 다행히 조상의 도움을 받아 평화를 되찾게 된 지금 다시 제후를 봉한다면 그것은 또한 앞으로 전쟁의 씨를 뿌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결국에는 평화를 원하는 것도 헛일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정위의 말이 참으로 옳다.”

결국 황자를 왕으로 봉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황은 천하를 36군으로 나누고 군마다 행정 장관과 군사령관과 감찰관을 두었다. 그리고 백성을 ‘검수’로 부르기로 했다.

진나라는 천하 통일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거국적으로 축하연을 베풀었다. 전국의 모든 무기들을 거두어들여 함양에 모아 그것을 녹여 무게 천 석(23톤)의 종과 동상 12개를 만들어 궁중에 안치했다. 다시 도량형을 통일하고 또 마차의 폭과 문자의 서체를 통일했다. 진나라의 영토는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조선까지 미치고, 서쪽으로는 임조, 강중, 남쪽으로는 북호까지 미쳤다. 북쪽은 황하를 기점으로 하여 음산 산맥을 따라 요동에 이르는 장성을 쌓아 그 지배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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