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식 광주광역시 서구청장

“지게를 지든 공부를 하든
하나는 열심히 해야 한다”

저는 영암 월출산 밑에서 이십 리 길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전남 강진군 작천면 용정리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광주 서중학교 시험을 봤으나 떨어지고, 광주고등학교와 동계인 동중을 졸업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는 광주고등학교가 아닌 광주일고를 나오는 등, 학교 다닐 때부터 모든 일을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된 데에는 누구보다 저의 어머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어머님은 야학에 잠깐 다니신 뒤 19살에 시집을 오셨습니다. 그리고 편찮으시기 전까지 평생을 일밖에 모르고 사셨습니다.
옛날 시골에 살면 누구나가 그렇듯이 학교 갔다 오면 소 풀 먹이고 깔 한 망태 베고 나머지 시간은 집안일을 돕는 것이 의례적인 일상이었으나, 저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어머님께서는 8남매 중 장남이었던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내게 맞는 지게를 맞춰 주시며 “예전처럼 학교 갔다 오면 하던 일들은 그대로 하되, 매일 나무를 한 짐씩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갈퀴로 동네 골목길의 지푸라기라도 한 바지게씩 긁어와라”고 하셨습니다.

시골생활이 모두 그렇고, 동네 친구들 역시 나처럼 똑같이 일하던 터라 저는 어머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칼퀴나무 한 짐이라도 해놓고 학교에 가다 보면 가슴이 뿌듯한 적도 많았습니다.

▲ 김종식 광주광역시 서구청장(오른쪽)과 그의 어머니, 동생.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은 저를 불러 앉혀 놓으시고는 “네가 일을 열심히 해줘서 참 고맙다. 사람은 지게를 열심히 져서 지게대학을 가도 먹고 살 수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진짜대학을 가도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앉은뱅이책상을 하나 사다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부터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 대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를 광주로 오게 됐습니다.

고향을 떠나면서 저는 시골집 마루 밑에 있는 흙을 한 움큼 파왔습니다. 그리고 그 흙을 책상 서랍에 넣어놓고는 행여 친구들이 놀자고 해도 그 흙을 꺼내보며 공부에만 몰두했습니다. 밤낮 없이 일만 하시는 어머님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말입니다.

그러시던 어머님이 10여 년 전 중풍으로 떨어지셨습니다. 그리고 7년 동안이나 병석에 계시다가 저 세상으로 가시고 말았습니다. 자식들 굶길까봐 한 평생을 일만 하고 사셨던 어머님이 말입니다.

“지게대학을 가도, 진짜대학을 가도 먹고 살 수는 있지만,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열심히 해야 살 수 있다”고 하시며 끊임없이 저를 담금질하시던 어머님…. 그런 어머님이 지금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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