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천손(天孫) 즉, 하늘의 자손으로 불렸다. 하늘을 향한 간절한 바람과 그리움이 어찌나 컸으면 한 나라의 국가(國歌)에도 ‘하느님(하나님)이 보우하사’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또한 한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고조선의 첫 임금인 단군왕검은 천제(天帝)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나타난다.

동방예의지국 즉, 군자국(君子國)으로도 불리는 대한민국. 하늘의 큰 복을 받은 민족이기에 예로부터 외세의 숱한 침략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백의민족. 외세의 압력과 계략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했던 그 설움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시 바로잡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걸음으로 ‘원구단(圓丘壇)’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 원구단. ⓒ뉴스천지

 

원구단(圓丘壇)이란

1967년 7월 15일 사적 제157호로 지정된 원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祭天壇)을 말하며, 일명 원구단(圓丘壇) 또는 줄여서 원단(窩壇)이라고도 한다.

이 명칭은 지신(地神)에 제사 드리는 사직단(社稷壇)이 음양론(陰陽論)에 따라 방형으로 쌓는 것과는 달리, 원이상천(圓以象天)이란 관념에 따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을 둥글게 쌓은 것과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은 농경문화의 형성과 더불어 시작됐으며, 삼국시대부터는 국가적인 제천의례(祭天儀禮)로 시행됐다.

하늘의 자손인 우리 민족이 오랜 상고시대부터 매년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단군께서 친히 하늘에 제사를 올려 국태민안을 기원해 왔는데, 이 제천단이 바로 ‘원구단’이다. 그리고 이 ‘원구단’ 천제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등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삼국사기’에 인용된 ‘고기(古記)’에 의하면 ‘고구려·백제가 다같이 하늘과 산천에 제사지내다’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에 제사지낸다’라는 내용으로 미루어, 이때부터 이미 제천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 성종 2년(983년) 정월조에 나타난 ‘왕이 원구(圓丘)에서 기곡제(祈穀祭)를 올리고, 몸소 적전(籍田)을 경작하였다’는 고려의 원구제는 5방의 방위천신(方位天神)과 전체 위에 군림한다는 황천상제(皇天上帝)에게 제사를 드렸다.

 

▲ 원구단. ⓒ뉴스천지

원구단의 수난

 

고려 말 우왕(禑王) 11년(1385년) 고려의 국가적인 의례는 제후의 의례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 당시 친명정책(親明政策)을 펴나가던 중이어서 부득이 제천의례는 폐지되고 말았다.

조선 초 제천의례는 제후국으로서는 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명분론과, 이와 달리 농업국가로서 전통적 기우제(祈雨祭)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의견이 갈려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게 됐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태조 3년(1394년)에 제후국의 예에 준하여 조선의 동방신인 청제(靑帝)에 제를 올리기 위한 원단이 설치되었고, 세종 원년(1419년)에 실시된 원구제(園丘祭)도 오랫동안 계속되던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시행했다.

조선 초부터 억제된 제천의례는 세조 2년(1456년) 일시적으로 제도화되어,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에 실려 있는 고려의 원구단(圓丘壇)을 참작하여 1457년 원구단을 신설하여 제를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원구제도 세조 10년(1464년)에 실시된 것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원구단이 다시 설치된 것은 고종 34년(1897년) 조선이 대한제국이라는 황제국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여 제천의식을 봉행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이 해에 의정(議政) 심순택(沈舜澤)이 천신(天神)에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상소에 의해, 규모와 체제는 역대의 예전(禮典)을 기초로 해 영선사(營繕使) 이근명(李根命) 등을 시켜 길지인 남교(南郊) 회현방 바로 지금의 소공동으로 건립지를 선정한 후 단(壇)을 건립했다.

광무(光武) 원년(1897년) 10월 고종 황제의 즉위를 앞두고 남별궁(南別宮) 터에 원구단을 쌓았고, 10월 11일 고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원구단에 나아가 천신에 고제(告祭)한 후 황제에 즉위했다.

이때에 건립된 원구단의 체제를 보면 황천상제위(皇天上帝位)는 단의 제1층 북쪽 동편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으며, 황지지위(皇地祗位)는 단의 제1층 북쪽 서편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고, 대명천(大明天)과 야명성위(夜明星位)는 각각 제2층의 동·서쪽에 있으며, 제3층 동쪽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오성(五星)·이십팔수(二十八宿)·오악(五岳)·사해(四海)·명산(名山)·성황(城隍)의 자리를 두고, 서쪽에는 운사(雲師)·우사(雨師)·풍백(風伯)·뇌사(雷師)·오진(五鎭)·사독(四瀆)·대천(大川)·사토(司土)의 자리를 두었다.

1911년 2월부터 원구단의 건물과 터는 조선총독부가 관리하였는데, 만행을 부려 1913년 원구단을 헐고 그 자리에 철도호텔(현재의 조선호텔)을 지었다.

현재 이곳에는 황궁우(皇穹宇)와 돌로 만든 북인 석고(石鼓) 3개가 남아있다. 팔각당 건물은 광무 3년(1899년)에 축조된 것으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의 팔각 건물이며, 이곳 중앙에는 태조 이성계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고, 익공계 건물로 청의 영향을 많이 받아 복잡한 장식이 있다. 또한 석고는 제천(祭天)을 위한 악기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몸체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용(龍) 무늬가 있다.

 


천제제천권 회복 외치는 박영록 총재
“우리 민족은 천손(天孫)이자 인류의 장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원구단’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원구단과 천제제천권 회복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한 호텔 안에 있는 작은 정원쯤으로 생각하고 무심히 넘길 수도 있는 이 ‘원구단’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박영록(전 신민당 부총재) 범민족화합통일운동본부 총재가 그 주인공으로 초선의원이던 1970년 독일 베를린 스타디움에 새겨진 손기정 선수의 일본 국적을 끌과 정으로 한국으로 바꿔 화제를 모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박 총재가 지금은 ‘원구단 회복’과 ‘천제제천권 회복’을 위해 만방으로 뛰고 있다.

박 총재는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천지조화에 의해서 탄생했기에 피조물이면서도 부모에게 물려받은 천성이 있다”며 “그렇기에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알게 되고, 부모가 바라는 바를 이뤄드려 즐겁게 해드려야겠다”는 의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세상만물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 우리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인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천손이자 인류의 장자인 우리 민족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이 하늘과 땅에 보답하고, 바라는 바를 지구상에 이루겠다는 것이 ‘천제(天祭)’로 나타난 것입니다. ‘천원지방’이라 하여 하늘을 위해 둥근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고, 하늘의 뜻을 받아서 ‘천리(天理)’가 통하는 하늘과 같은 세상을 현 세상에 만들자, 그것이 바로 원구단에서 천제를 지내면서 바랐던 뜻입니다.”

박 총재는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 곧, 백의천사로서 ‘인류가 하나 되어 세계평화를 도모하고, 이 땅 위의 천국을 이루자’라는 의미로 천제를 드려온 천손(天孫)”이라며 “하얀 옷을 입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하늘의 뜻을 지구상에 전하다 보니 그동안 숱하게 외세의 핍박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사대주의사상과 일본의 천황사상으로 인해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었던 천손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그 의무를 저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박 총재는 “우리 민족은 유일하게 이 세상에 천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며 “이러한 믿음과 생각이 종교와 서양문물에 의해 거의 빈사상태에 빠진 수준”이라고 애통해 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은 천손이다. 장자다. 하나님을 향해 하늘에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빈다. 그러면 그 소원을 들어주신다. 이것이 소통이다. 하늘과 통하는 민족이다”고 강조했다.

또 “이 땅에 극락, 천국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런 것을 이룰 수 있고 우리는 이룰 수 있는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며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아도 천지조화시대가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어렸을 때는 부모를 못 알아봤지만 인류역사상 우리가 제일 먼저 하늘과 땅이 부모라는 것을 알았다”며 이 시대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원구단 회복과 천제권 회복은 중요한 일이라고 피력했다.

그는 “우리 민족은 ‘광명이세(光明理世)’ 즉, 밝은 빛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민족이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정신을 가진 민족이다”면서 일본에게 빼앗긴 ‘천제권’을 하루속히 찾아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박 총재는 “우주의 위치가 달라져 천지가 달라지고 세상이 잘못된 것”이라며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안테나를 하늘에 맞춰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덧붙여 하루속히 원구단 제천권을 회복해 하늘의 자손으로서 장자민족으로서의 면모를 갖출 것을 당부했다.

 

광명이세, 동방의 등불

우리 민족은 유달리 근본과 족보를 중요하게 여긴다. 각 개인의 족보와 근본을 중시 여기는 만큼 우리 민족의 근본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의 국조는 단군이다. 외세에 의해 ‘신화’로 전락하기도 했지만 단군왕검의 존재는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 단군은 어떠한 존재인가. 강화도 마니산과 태백산에는 단군이 쌓은 제단이 있다. 그 유적들 중에서도 강화도 마니산 제단은, 영, 혼, 육 3일체 인간의 상징을 반영한 제단으로 단군이 ‘사람 안에서 하늘의 영과 땅의 혼이 하나 됨(3일체 인간사상)’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군은 그가 쌓은 제단에서 천제를 드린 제사장이자 인간을 치리하는 왕이었다. 이러한 단군이 제사를 드리며, 섬긴 신은 과연 누구인가. 그에 대한 답은 단군이 남긴 삼일신고(三一神誥)에 있다. 삼일신고란 문자 그대로 삼위일체 신을 고한다는 뜻이다. 즉, 단군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하여, 증거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민족이 하늘의 자손이요,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장자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뿐만 아니다. 밖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은 우리나라를 향해 ‘동방의 등불’ ‘동방예의지국(군자국)’이라고 칭한다. 인도의 타고르가 우리를 향해 ‘동방의 등불’이라 불렀던 것은 ‘광명이세’ 즉, 하늘에다 제사를 지내고 빛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그 권능이 동방의 등불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홍익인간’과 ‘경천애인’ 사상이 민족의 근본사상임을 안다면 이제라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권의 회복과 원구단의 회복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천손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때에 그 옛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이 땅에 천국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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