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부모양육 과정에 따라 선악 인격 형성돼

▲ 사이코패스 헐리우드 스릴러 범죄영화 ‘양들의 침묵’과 같은 한국영화도 이제 쉽게 접하게 됐다.

1월 말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이 보도된 이후 몇 명을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한 살인 행각이 자세히 밝혀지면서 시민들은 불안감에 떨었다. ‘강호순 집 옥상서 여성속옷 및 스타킹 발견’ ‘완전범죄 위해 손톱 절단’ ‘강호순 보험의 달인인가’ 등의 기사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휴대폰 위치추적, 호신용품 구매 등과 더불어 사이코패스 테스트도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졌다.

또한 강호순 팬 카페까지 등장해 논란이 됐었다. 강호순이 사회에 안긴 파장은 컸다. 전문가들은 강호순을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로 분류했다. 최근 ‘사이코패스’가 주목받고 있는 반면 과연 사이코패스에 관해 얼마나 바른 지식을 갖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에 사이코패스란 무엇이며, 무엇이 문제인지, 대책은 없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이코패스’는 타고나는 것?

국내에서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알려진 것은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첫 사이코패스 진단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는 2004년 7월 검거되기까지 10개월 동안 21명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사체를 절단해 유기하는 등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벌여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고 간 인물이다.

뒤를 이어 정남규, 보성 연쇄살인 어부 오종근, 그리고 지난 3일 군포 여대생 살인 사건 강호순도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하다는 분석 결과를 받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단어인 ‘사이코패스’란 과연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 성격(인격)장애를 일컬어 ‘사이코패시(Psychopathy, 정신병질)’, 그런 사람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한다. 이 개념은 1920년에 독일의 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처음 소개됐다. 전문가들은 반사회적 성격이 사이코패스 내부에 잠재돼 있다가 범행을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는 냉담하고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사기나 절도, 잦은 이직, 성적 문란, 가정에서의 무책임, 방화, 동물학대, 거짓말 등이 사이코패스 징후라고 설명한다.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나 잘못에 대한 뉘우침 결여, 충동조절의 어려움 등도 사이코패스의 대표적인 특질로 거론되고 있다. 이런 사이코패스가 타고나느냐에 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 이런 기질이 있다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여부와 유전학 상으로 검토해야 하는지, 사회적 환경이 결정적인지 여부는 관련학계에서는 아직도 논의 중이다.

이무석(전남대 정신과) 교수는 “동물은 유전적으로 타고나면 실제 행동 그대로 나타나지만 인간은 유전적으로 타고났더라도 후천적인 학습효과가 높기 때문에 타고난 유전형질이 그대로 성격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이수정(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사람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며 “그렇게 되기 전에 소년 사법제도를 개선해서 결손 환경의 아동이 보호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치료 후 재범률 더 높아 

▲ 국내에서 첫 ‘사이코패스’로 진단받은 유영철, 그 뒤를 이어 제2의 유영철로 불린 정남규, 강호순(맨 윗줄부터).

‘진단명 사이코패스’의 저자인 로버트 헤어 박사는 사이코패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지난 25년간의 임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 한국에는 조은경(한림대 범죄심리학) 교수에 의해 소개됐다.

헤어 박사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는 치료 후 오히려 재범률이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결과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을 더 잘 조종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이다. 헤어 박사는 사이코패스는 치료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신이 갱생되었다거나 ‘다시 태어났다’고 둘러대며 잘 속는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따라서 그들은 다시 사회로 나가 더 강도 높은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헤어 박사가 사이코패스는 ‘치료’라는 용어보다 ‘관리’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헤어 박사가 개발한 사이코패시 진단 도구인 사이코패시 평가표(PCL-R)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조은경 교수는 혹여 자신을 괴롭히는 주변 사람들을 사이코패스로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 했다.

조 교수는 사이코패시에 대한 진단은 훈련받은 전문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므로 섣불리 누군가를 사이코패스로 판정,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겠다고 당부했다. 특히 사이코패시에 대한 치료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제2의 강호순’ 막을 방법 없나

헤어 박사의 보고에서 사이코패스는 교정을 시도할수록 오히려 재범률이 높아지고, 법망을 피해갈 방법을 모색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사이코패스를 없앨 수 없다면 우리의 안전망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헤어 박사는 오직 경쟁만을 가르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의 존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무석 교수는 사이코패스가 후천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성격이 발달하는 유년기에 부모의 양육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무석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인격 속에 본능 부분인 ‘이드(id)’와 도덕과 양심 부분인 ‘슈퍼에고(superego, 초자아)’가 있다. 이것을 현실에 맞게 잘 조정하는 것이 ‘자아’다.

그는 처음 배움을 접하는 부모의 교육을 통해 교육되고 학습돼 인격의 한 부분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초자아라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초자아가 구멍 뚫린 사람이 도덕성과 양심 부분이 신기할 정도로 발달이 안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교수는 오로지 일류대학만을 가기 위해 성적을 최상의 가치로 가르치는 사회에 대해 한마디 했다. 즉, 최고 가치인 예의범절,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한 룰이라든지 이런 것이 종속가치로 전도되고 있다면서 좋은 대학만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회분위기가 이 같은 사이코패스를 양상해 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교수는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들이 이끄는 건강한 사회에서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유형들이 발 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회적인 시스템도 문제지만 중요한 것은 강호순만 비난 말고 나 자신은 어떠한지 들여다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나 자신이 먼저 내 남편 혹은 아내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내 출세만을 위하는지, 올바른 가치관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즉, 나부터 올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수정 교수는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를 과도하게 훈육시키거나 신체적 체벌을 심하게 가한다든지, 학대를 하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가가 개입해서 어떻게든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이코패스는 헐리우드 스릴러 범죄 영화에서 주로 볼 수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 중 한국에 알려진 영화로는 ‘양들의 침묵’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국내영화에서도 쉽게 접하게 됐다. ‘살인의 추억’ ‘추격자’ ‘검은 집’ 등 영화들은 범죄의 잔혹성을 고발한 동시에 모방범죄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강호순 사건 이후 사이코패스 열풍에 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적 원인보다는 ‘누가 사이코패스인가’ 감별법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감별하고 감시하려는 자세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안전한 사회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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