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공인 ‘알권리 당연’… 신중한 검토가 우선 ‘또 다른 인권 훼손돼’

군포 살해 사건의 주범인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일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자의 ‘인권우선’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피의자 호송 때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낸 이후 지난 1월 처음으로 흉악범의 ‘얼굴공개’가 몇몇 언론을 통해 이뤄졌다. 해당 언론들은 공익을 위해 범죄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연쇄살인범과 같은 흉악범에 대해서는 ‘공인과 같은 수준의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와 ‘사법적 판단과 피해자의 인권 차원에서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놓고, 논쟁이 치열하다. 현행법상의 문제와 논란의 핵심을 짚어보고 각각의 주장을 살펴보고자 한다.

 

“반인륜적인 범죄자는 ‘짐승’… 인권이라니”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연일 보도되는 사건ㆍ사고 소식에 국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 바쁘다. 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갈수록 범행수법이 잔인해지고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는 흉악범들이 ‘우리 동네’ ‘내가 알던 사람’ ‘방심하면 나도’란 생각을 갖게 하면서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고 있다. 선한 인상, 친절이란 가면 뒤에 숨겨져 있던 살인마의 얼굴은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동시에 ‘인면수심 범죄자의 얼굴을 왜 가려주나’란 국민들의 분노가 점점 거세지면서 ‘범죄자 인권만 있고 피해자 인권은 없는가’에 대한 항의도 빗발치고 있다.

사안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보니 각계각층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화배우 공형진은 ‘인권은 사람이 사람다울 때…’라는 제목의 2월 9일자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강호순을 비롯한 끔찍한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이미 인간이길 포기 아니, 거부한 그야말로 짐승보다도 못한 자들”이라며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담보로 개인의 이익이나 욕구 충족을 위해 저지른 범죄를 정신적 질환으로 혹은, 인권이라는 이름하에 지켜주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밝혔다.

여기다 얼마 전, 범죄자의 인권을 호소한다는 명목아래 이례적으로 강호순을 위한 팬 카페가 등장해 충격을 던진 바 있다. 카페를 개설한 운영자는 국민들의 분노를 사며 얼마 못 가 카페를 폐쇄했지만 이는 오히려 범죄자의 인권을 호소하는 측을 향한 적대적인 시각을 부추기는 모양새가 됐다.

현재 국민여론은 범죄자 얼굴공개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000명을 대상으로 ARS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 예방 등을 위해 흉악범죄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79.4%가 나왔다. 반면 ‘피의자 인권 및 가족 불이익 방지를 위해 공개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은 17.6%로 조사돼 많은 국민들이 얼굴공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 아고라에서도 신상공개와 관련된 토론글이 게시된 지 4일 만에 조회 수가 7만 건이 넘었고 토론 글도 1700건 이상이 달렸다. 몇몇 반대의견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네티즌 의견이 ‘흉악범에 대한 사회적 경종’과 ‘살인자에 대한 인권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인 상황이다.

 

신상공개 찬반 논리 요약

신상공개 찬성 논리

신상공개 반대 논리

○ 사회적 공익과 사회 안전망 확보

○ 무죄추정의 원칙

○ 범죄예방 효과

○ 과도한 이중처벌 및 연좌제의 우려
 - 여론재판
- 공개에 따른 2차적 피해

○ 국민의 알권리
- 반인륜 범죄자의 신상은 당연히 공개
 - 선진국 사례 : 미국, 프랑스 등은
살인범, 아동 성폭행범 등은
신상공개 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

○ 사회적 합의의 미 정립
- 사회적 비용에 따른 합의가 부재

                                                     * 송경재(경희대 학술연구) 교수 요약 정리


 

 

 

 

정보공개 명확한 기준 없어 법·제도의 사각지대

▲ 현장검증에 나서는 강 씨의 모습. 포박된 채 얼굴을 가리고 있다. ⓒ뉴스천지

여전히 찬반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현행법과 관련, 공인(公人)과 공익(共益)에서 답을 찾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공적 관심이라는 한도 내에서 ‘공적 인물’로 본다면 얼굴공개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법이나 신문윤리강령에도 흉악범의 신상공개에 대한 조항은 없는 것이 현 상황이다. 경찰은 아직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85조 초상권 침해 금지에 근거한 것이다.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형사 절차상 확정판결 전까지는 초상권이 보호돼야 하는 것.

이는 확정판결 전 초상권 보호 원칙으로 수사과정의 혐의와 달리 재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도 있음을 감안한 것이다. 혐의자 얼굴 공개로 인해 가족들이 입게 되는 상처도 고려된 부분이다. 하지만 강 씨의 경우처럼 자백을 토대로 현장발견 등 명백한 증거가 있을 땐 이 같은 원칙이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거세다. 이에 경찰은 외국입법례와 한국 범죄현실, 국민여론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공개범죄와 한계·절차 등을 신중히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정보공개의 명확한 기준 없이 법·제도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어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기준 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 반대의견 높아… 사회적 합의 우선해야

얼굴공개에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국민여론과는 다르게 국내 헌법학자 3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흉악범의 얼굴공개에 대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는 찬성이 46.7%(14명), 반대가 53.3%(16명)로 나타났다. 지난 2월 6일 변호사와 언론학자 등이 열띤 토론을 벌인 언론인권센터 주최 ‘언론공개의 한계선’이란 주제 포럼에서도 반대의견이 많았다.

▲ 언론인권센터 주최로 열린 제1차 언론인권포럼. ⓒ뉴스천지

이날 김종천(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 변호사는 공인이기 때문에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다수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 관계되는 사람을 공인이라고 하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공인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며 입장을 달리했다. 이로써 사인(私人)인 강 씨에 대해 국민들이 알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범죄 예방효과에 대해서도 강 씨가 이미 체포돼 극형을 앞두고 있는데 얼굴공개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반면, 찬성 의견을 냈던 김창룡(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인권을 과잉보호해 언론 보도가 위축돼 왔다”며 이스라엘과 영국의 사례를 예로 들며 “연쇄살인자, 테러, 아동성폭행 등 범행에 따라 한정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미국의 경우 중범죄 용의자는 사진과 신상을 공개하고, 일본도 무차별 살인을 자행한 피의자의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바 있다.

이 같은 선진국의 사례를 들며 찬성을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 박미숙(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우리 역사도 고려해봐야 한다”며 “단순 비교는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박 박사는 우리나라가 흉악범의 얼굴 비공개로 간 것에 대해 “국민들의 인권의식이 성장한 결과물”이라고 평했다.

발제자로 나선 송경재(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한 언론에 대해 국민 알권리에 대해 얼마나 논의가 있었는지를 꼬집으며 “공개와 비공개를 말하기 전에 사전적인 대안제시와 사회적 합의가 우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범죄자 인권은 둘째치고라도 그 아이들은…”
살인범 누명 36년 만에 무죄판결 받은 정원섭 목사 인터뷰

▲ 정 목사는 얼마 전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뉴스천지
강간살인범으로 누명을 쓰고 15년 옥살이 끝에 지난해 11월에서야 무죄판정을 받은 정원섭(75, 충절교회) 목사가 범죄자 얼굴공개와 관련한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36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1972년 무기징역 선고를 받았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정 목사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그가 무죄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지금 심경을 묻는 질문에 “몇 달이 지난 지금은 그저 그렇다. 지금 남은 감정이라면 진실은 죽지 않는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진실 편이시라는 깨달음이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법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비록 시일은 36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바르게 매듭지어졌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소감이 무엇이 있겠나.”

정 목사는 범죄자 얼굴공개 논란과 관련해 “피의자가 아니더라도 원칙상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강 씨 사건은 증거가 확실하다고 하니 얼굴공개가 된 상황에서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다만 내가 염려하는 것은 그 가족들의 인권을 말하고 싶다. 가족들이 무슨 죄가 있나.”

정 목사의 경우는 수사과정에서 기자들에 의해 사진이 공개됐다고 했다. “우리 집을 수색해 앨범에 있는 것을 기자들이 가져다가 신문에다 크게 냈다.” 가족사진도 그때 공개됐다.

정 목사는 “아내가 출산 후 며칠 안 되어 아이를 씻기고 있던 중에 갑자기 몰려온 동네사람들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발로 차이고 몰매를 맞아야 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해자 아이의 엄마는 대낮에 식칼을 들고 찾아와 정 목사의 아들을 내놓으라며 내 아이를 죽였으니 저 아이도 죽어야 한다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은 살인자 아들이라고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것에 상처를 받아 집에 와서 우는 일이 많았다”는 말을 하며 가장 마음 아파했다.

정 목사는 아직도 경찰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 그의 36년의 세월을 영화로 만든다. 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많을 터. 그는 ‘고문이 있는 사회는 망하는 사회’라는 것을 가장 말하고 싶다고 했다. 정 목사는 얼마 전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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