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염려하고 만류하는 가운데 본지가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다. 어쩌면 옛적부터 예비 된 언론사가 아닐까. 사분오열되고 내 것만이 옳다는 사상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상황에서, 또 정의와 정도가 발 붙일 수 없는 세상에서 출발하는 본지는 이 같은 현상들을 연합하고 봉합하고 고쳐 모두가 살 만한 세상으로 이끄는 길(道)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시대적 사명을 깨닫기 때문이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지금이 잘못된 가치관이 만연해 있다 할지라도, 그 잘못됨의 극치는 곧 새로운 세상을 잉태하고 있기에 오히려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력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런 때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자각(自覺)이다. 우리 스스로 나와 현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모두의 염려대로 희망은 요원하다. 그래서 본지는 무엇보다 특정 계파나 계층, 종단을 넘어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공존의 지혜를 알리는 언론이 되려고 애쓸 것이다.

굳이 언론사의 방향을 묻는다면 ‘중도개혁(中道改革)’이라 말할 것이다. 중도개혁이란 완성을 향해 존재하는 과정이다. 완성을 향한 중도개혁의 과정은 동양철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용(中庸)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 자칫 이 중용을 잘못 이해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으로 호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용의 본질적 의미는 그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으며 바뀌지도 변하지도 않는 도(道) 즉, 진리를 의미한다.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은 이미 정도(正道)에서 떠나 치우쳐 있음을 스스로 시인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중용의 도가 동양사상을 지배해 왔으나, 오늘날까지 성인들의 훌륭한 깨우침을 자기편의적으로 왜곡시키고 변질시켜 온 우리의 무지를 고백할 때가 온 것이다. 결국 본지가 추구하는 이념인 중도(中道)는 이 같은 중용의 학문을 실현시키는 길(道)이 됨을 깨달아야 한다.

개혁의 의미도 없었던 것을 새로이 창조하는 것도, 있었던 것을 없애는 것도 아니다. 본래부터 존재했으나 무엇인가에 의해 잘못되고 변질되었기에 바로 고치고 세워 온전케 하는 일임을 예부터 성인들은 외쳐왔던 것이다. 결국 ‘중도개혁’이라 함은 바른 세상, 옳은 세상을 향한 도전이며, 정의와 정도 그리고 공의와 공도가 살아있는 세상을 건설하자는 호소인 것이다. 이와 같은 동양사상이 우리의 민족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모토였음을 발견해야 한다.

심지어 기독교의 성서에서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셨으니 중도개혁의 선구자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화해와 상생의 기치를 들고, 옳고 바른 세상을 구현키 위해선 이 모습 이대로는 아니 되겠기에 새롭게 요구되는 창조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무엇보다 민족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회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도, 온전해질 수도 없다는 시대적 요구에 발 맞춰 민족의 자긍심을 되찾는 일에 길잡이가 되고자 한다. 이와 같은 방향은 궁극적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인류의 지상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제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그 어떤 계층도 종단도 아닌 모든 사람들을 위한 신문, 삶의 목적과 의미를 되찾게 해주는 신문, 이 지구촌에서 없어선 안 될 꼭 필요한 언론이 될 것이다.

동방의 등불, 백년 전 타골의 예언이 성취되는 나라를 창조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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