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음모론이란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의 원인이 명확하지 못할 때 배후에 거대한 권력조직이나 비밀스런 단체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불륜 스캔들로 인하여 미국의 CIA 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사임한 것도 정치적 음모 때문이라는 말이 솔솔 나오고 있고, 9·11테러는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주장까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목적 때문에 김현희의 대한항공기 폭발 사건을 정부가 기획했다는 음모론이 있었다. 최근에는 K팝이 황당무계한 음모론에 시달리고 있다. 유력한 국내 가요계 인사들의 프리메이슨(일종의 비밀결사 조직) 가입설에 이어서 싸이와 노스트라무스의 예언을 이은 종말론까지 등장했다. 음모론자들은 SM·YG 등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K팝 그룹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담겼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증거’라는 게시물들은 그럴듯하게 조합돼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퍼지고 있다.

게다가 이번 대선전도 별의별 네거티브 선전, 루머, 음모론이 다 등장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종교와 연관됐다느니, 돈 주고 여론 조사를 한다느니, 하루가 멀게 근거 없는 음모론이 SNS와 인터넷에 쏟아졌다. 최근 전력난이 선거 당일 개표를 조작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란 것부터 특정 후보가 당선되면 남자 아이돌을 전부 군대에 보낼 것이라거나 수업시간이 연장된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초·중학생을 중심으로 퍼지는 등의 내용도 있다. 11일 새벽 카카오톡 서비스가 일시 중단된 것을 두고도 음모론이 일었다. 안철수 전 교수가 말했던 새 정치는 온 데 간 데 없고,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정치판은 그대로여서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있다. 이러한 음모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만, 한편으론 그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아예 사실로 믿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빠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의심’이다. 대개 정부나 사건과 관련된 단체 혹은 개인이 설명하는 이유를 믿지 못하고, 확실하게 납득이 가지 않으므로 ‘혹시 다른 이유가?’라는 의심의 마음이 고개를 든다.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혹시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거나 오랫동안 사실로 믿었던 것이 거짓으로 판명난 적이 있었는가? 만일 그러했다면 당신의 의심 지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이유는 ‘투사’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 텐데…’의 악한 마음이 사실은 내 마음속 깊이 숨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음모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거대한 조직의 누군가가 …했을 것이다’는 “내가 아니라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잖아.”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한 마음은 상대방이 아니라 내게도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세 번째 이유는 ‘흥분’이다. 음모론을 강력하게 얘기하는 사람의 표정을 살펴봐라. 마치 확신에 찬 듯이 강한 어조로 때로는 자신만이 음모론을 제대로 알고 있어서 우매한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는 음모론을 말하고 있는 중에 종종 감정적 흥분에 빠진다. 무엇인가 특이한 설명 내지는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얘기하는 동안 미묘한 쾌감을 느낀다.

네 번째는 ‘열등감’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열등감이 있다.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근원적인 열등감에서부터 외모, 학력, 재산, 인기, 사회적 성공, 남들과의 비교 등과 관련된 열등감까지 실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나는 여기에서 어떠한 열등감을 갖고 있는가? 음모론의 내용은 대개 힘이 있는 기존의 권력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희생자를 만들거나 힘없는 사람들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만들어놓은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과 보이지 않는 권력에 위해서 나 자신이 무력해질 때 음모론은 나 스스로를 위로해주는 도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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