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난은

천상병(1930~1993)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도
잔돈 몇 푼이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치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딸들이,
내 무덤가 무성한 풀잎으로 때론 와…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시평]
가난이 결코 흉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을 부끄러이 여김은 아마도 가난을 싫어하기 때문이리라. 어디 세상에 가난을 좋아할 사람이 있겠는가.
한 잔의 커피와 갑 속에 든 두둑한 담배, 그리고 해장을 하고도 남아 있는 버스값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삶은 비록 가난하나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없다.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말하고 있는 시인. 밝게 비추는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이 없기 때문에, 이 밝고 밝은 햇빛 아래에서 떳떳할 수 있다는 시인.
그러나 이러한 시인에게도, 때때로 세상은 ‘씽씽 바람 부는’, 그러한 세상이었던가 보다. ‘괴로웠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스스로 묘비명을 쓰고 있으니.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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