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달력’, 요즘 종말론의 대표 아이콘이다. 이 마야력이 종말론자들의 주장과 해석대로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종말은 불과 10일도 채 남지 않았다. 2012년 12월 21일이 지구가 멸망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이 종말론을 신봉하며 마치 종말을 즐기기라도 하듯 기다리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지구 종말을 부인하는 부류가 상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구가 종말을 맞는 걸까 아니면 지구의 종말이 없으나 거짓말로 믿게 해 돌아오는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를 가진 세력에 의한 하나의 해프닝일까. 또 한편으로는 무지의 발로인가.  

어쨌든 신봉자들에겐 틀림없이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지금까지 마야달력과 함께 지구종말을 기정사실화한 영화나 거짓 예언가들의 난무한 종말설,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불안감과 공포, 핵무기 등 신무기의 발달 등으로 인해 부지불식 간에 지구종말설에 길들여지고 세뇌(洗腦)돼 왔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여기에다 지구종말설의 방점이 돼 온 결정적 역할은 바로 종교다. 종교 가운데서도 어쩌면 성서를 거짓 왜곡시킨 ‘기독교 교리’라고 확언할 수 있다.

인류의 영원한 세계를 약속하고 있는 것이 종교(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류의 종말을 알리는 종말론의 진원지(震源地)가 돼 버린 종교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며 어처구니가 없다.

어찌됐든 이처럼 말세사상의 혼돈 속에서도 종말론에 특수를 누리는 집단과 세력 그리고 나라가 있다는 것이 또 다른 의미의 말세현상이 아닌가 싶다.

‘지구종말론’에 특수를 누리는 대표적 세력이 있다면 아마 세상 종말이 와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자기 신념적 논리, 즉 ‘예수구원, 불신지옥’이라는 말로 성도와 국민 나아가 인류를 감언이설로 미혹하는 기독교 세상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또 마야달력의 본고장인 마야문명권, 즉 멕시코․과테말라 등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무대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종말관광’ 특수가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니, 영․육 간에 재미 보는 대상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다.

이제 우리에게 정작 궁금한 것은 오늘날 종말론을 불러온 마야달력엔 도대체 어떤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말인가.

이 마야력은 기원전 10세기경 유카탄 반도, 즉 오늘날 멕시코․과테말라 등 중앙아메리카 지역에서 괄목할 만한 문명의 발달과 번영을 가져 왔던 마야문명권의 고유한 역법이다. 이 마야인들은 천문학과 역법에 능했으며, 특히 20진법에 의한 날짜 계산으로 먼 미래까지 예측이 가능한 뛰어난 민족이었다고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의 한 주기가 약 400년(394년 주기)쯤 되는데, 이를 ‘1박툰’이라 했으며 날짜로 계산하면 144,000일이 된다. 이러한 마야력에 의하면 세상의 한 주기는 13박툰으로 짜여져 있는데, 고대 마야의 천문학자들은 이 13박툰 가운데 6박툰에 현재 자신들이 살고 있음을 큰 돌로 만든 달력에 기록해 놨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13박툰, 즉 세상의 대주기가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을 원년으로 시작해 끝나는 때가 바로 2012년 12월 21일이라는 뜻이 된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12월 31일에 끝나고 또 새해를 시작하는 것처럼, 마야인들도 2012년 12월 21일에 대주기를 끝내고 새로운 기나긴 기간이 다시 시작되게 되는 것이다.

지구의 종말은 있을 수가 없다. 우주만물을 창조한 창조주께서 창조한 피조물을 다 끝내려면 애당초 창조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종말이요 멸망이요 말세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 끝난다는 것인가.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부패하고 타락한 기독교세계의 종말 나아가 크게는 종교세계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음을 진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세인하지(世人何知)라 했듯이 이 세상이 어찌 알겠는가.

성서에 기록된 것을 살펴보면 하나님은 세상의 농사짓는 이치를 들어 하나님의 경륜을 이미 알려 왔다. 다만 인간의 교만으로 깨닫는 마음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를 잃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두 가지 씨 뿌릴 것을 구약의 선지자를 들어 미리 예언(렘 31:27)해 놓고, 그 예언한 때가 되어 예언한 대로 초림예수를 통해 씨를 뿌렸다(마 13:24~25). 그리고 예수를 통해 씨 뿌린 밭에서 추수할 때가 있음을 다시 새언약 했다(마 13:30). 그리고 신약의 약속, 즉 계시록이 이루어지는 때에 약속대로 2천 년 전 씨 뿌린 밭에서 자란 곡식을 거둬들이는 추수가 있게 된다(계 14:14~20, 약 1:18).

잠시 확인할 것은 여기서 뿌려지는 씨는 어떤 씨이며, 밭은 어떤 밭인가. 또 추수 때는 어떤 때인가를 먼저 알아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고 또 뜻대로 할 수 있다.

2천 년 전 예수께서 뿌린 씨는 세상적 육의 씨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 즉 영의 씨(눅 8:11, 요 6:63)였으며, 그 씨가 뿌려진 밭은 “제 밭” 곧 예수님의 밭(마 13:24)이니 오늘날 교회를 말하며, 이 “밭은 세상이요(마 13:38)”라고 했으니 오늘날 교회가 바로 세상이 된다. 그렇다면 교회인 밭에서 추수의 역사가 있게 된다면 그 때가 바로 계시록이 이루어지는 때임을 성경적으로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대목에서 꼭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가라지와 곡식으로 나뉘어져 가라지는 단으로 묶여 불사름 당하고, 곡식은 곳간으로 들어가는 그 때가 바로 추수 때(마 13:30)’라 했으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마 13:39)”라고 했다는 데 있다.

오늘날 끝이 나는 세상은 지구의 종말이 아닌 부패하고 타락해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는 기독교 세상을 불살라 끝내고, 새로운 의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창조주의 굳은 결의가 담긴 결단이었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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