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진(1955~  )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시평]
시골로 이사를 와서 살면서, 풀을 뽑거나 풀을 베는 일이 많아졌다. 마당이나 텃밭의 풀을 뽑거나 베다보면, 그 풀이 물씬 풍겨주는 향기, 그 향기가 전신을 흔들 때가 때때로 있다. 풀을 베거나 뽑을 때 뽑히지 않으려고, 혹은 베이지 않으려고 쓰는 풀들의 안간힘. 그 안간힘으로 풀들은 더욱 푸르게 질려버리고, 이내 뽑히는 아픔으로 비명을 지르듯이 풀들은 향기를 지르는 것이 아니겠는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 그것은 보다 치열한 삶의 한 표현이리라. 그러므로 모든 상처는 어느 의미에서 치열한 향기를 지니고 있으리라. 치열함을 지니고 있으므로, 상처는 아름다운 것이리라. 뽑히거나 베어질 때 풀이 지르는 향기. 그 치열한 아름다움. 치열한 아름다움, 어디 풀에서뿐이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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