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韓)나라 기술자 정국이 진나라에서 관개용수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공사는 진나라의 국력을 소모시켜 동쪽 정벌을 억제하기 위한 한나라의 모략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진나라 중신들은 일제히 조정의 타국 출신 채용자들은 첩자로 믿을 수가 없으니 추방해야 된다고 왕에게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자 이사가 왕에게 타국 출신의 인재들을 진나라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서 등용하여 패업을 이룬 역대의 왕들을 열거하며 진왕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번의 타국 출신 인재들의 추방이 이루어지면 반대로 자기 나라 백성을 버리고 적을 이롭게 하며 빈객을 멀리하여 제후들에게로 쫓을 뿐만 아니라 천하의 인재가 진나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 조처야말로 마치 적에게 병사를 빌려주고 도적에게 식량을 대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구슬이나 음악 등은 진나라 이외의 것일지라도 소중하게 여겨야 될 것이 많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나라 출신이 아닐지라도 진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유능한 타국인을 내쫓으면 국가에게 손해를 끼치며 적을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로 국내의 인재가 부족하게 되면 나라의 평안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시황은 구구절절 이어진 이사의 바른 말을 듣고 타국 출신의 추방령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논하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 그를 더욱 신임하게 되었다.

그 뒤 위나라 도읍 대양출신 위료가 진나라에 찾아와 시황에게 말했다.

“진나라의 강대함을 생각할 때 각 나라의 제후들은 진나라 영내의 군이나 현의 장관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단지 경계해야 될 것이 있다면 이들 제후들이 합종하여 진나라의 허를 찌르는 것입니다. 진(晋)나라의 지백이나 오나라의 부차, 제나라의 민왕이 멸망한 것도 상대가 허를 찔렀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을 당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제후의 중신들에게 돈을 뿌려서 서로 이간을 시켜 놓아야 합니다. 아마 삼십만 금만 쓰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나라 왕은 그 의견을 받아들였고, 위료를 만나게 되면 예를 지키고 의복이나 식사도 최고의 대우로 대접하였다.

그러나 위료가 말하기를, “진나라 왕은 눈이 가늘며 코는 독수리 부리 같고 가슴은 새처럼 튀어 나왔으며 목소리는 늑대를 닮았다. 아무리 보아도 인간다운 마음을 갖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이 곤란에 처했을 때는 겸손하지만 일단 뜻을 이루고 나면 돌아보지 않을 사람이다. 지금 한낱 떠돌이에 불과한 나에게도 겸손을 보이지만 천하를 얻은 뒤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할 것이다. 오래 옆에서 함께 일할 상대는 아니다.” 그렇게 말하고 진나라를 떠나려고 했다. 시황은 그 뜻을 얼른 알아차리고 그를 재상에 해당하는 요직에 앉혔다. 그렇게 하여 위료의 정책 결정은 대부분 채택되었고 이사에 의하여 실천에 옮겨졌다.

왕전은 빈양의 동향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병법을 좋아한 그는 어른이 되어 시황에 의해 관리로 임명되었다. 시황 11(기원전 236)년에 왕전은 장군으로서 조나라를 공격하여 알여에서 조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아홉 개의 군과 읍을 빼앗았다. 18년에 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여 일 년의 전쟁 끝에 드디어 조나라 왕을 항복시키고 그 영토를 모두 진나라에 편입시켰다.

그 다음 해에 연나라가 자객 형가를 보내 시황을 살해하려고 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격분한 시황은 왕전에게 명령하여 연나라를 공격했다. 왕전은 연나라 수도 계를 점령하고 연나라 왕 희를 요동 쪽으로 내쫓은 뒤 뒤돌아 왔다.

시황은 다시 왕전의 아들 왕분을 남쪽의 초나라로 원정을 보냈다. 왕분은 초나라 군대와 싸워 승리를 하고 그 여세를 몰아 위나라로 쳐들어가 위왕의 항복을 받고 그 나라 영토를 모두 점령했다. 그와 같이 진나라는 삼진(한, 조, 위)을 무너뜨리고 다시 연나라 왕을 변경으로 내쫓고 또 초나라 군대를 대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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