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정애 서울동대문소방서 홍보팀장
장정애 서울동대문소방서 홍보팀장

저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서, 서울로 취직을 하러 올라온 농촌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우리 세대 누구나 그렇듯이 산골짜기 소녀랍니다.

어릴 적 오로지 취직해서 고생하신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하지만 바쁜 도시생활에서 매일 매일이 전쟁터 같은 생활에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지금도 여든이 넘으신 노구에도 1남 6녀인 자식들에게 당신이 농사지으신 농작물을 조금이나마 주고 싶어서 꼬부랑 허리를 꾸부리며 열심히 밭을 일구고 계십니다. 그런 아버지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이 되고자 거의 매일 전화를 드리고 있긴 하지만 아버지 마음에 비하면 새발에 피겠지요. 엄마는 논에 물을 대러 가시다가 갑작스럽게 오토바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꿈같은 순간입니다. 그 긴 세월 아버지께서는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으시고 농촌에서 자식들을 모두 다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7남매라는 많은 인원 때문에 어릴적 양말이라도 제대로 신으려면 누구보다 빨리 양말을 찾아야 했고, 지금 기억에 농촌에서 7남매를 다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비닐하우스를 20여 년이 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돌아오는 5일장에도 제대로 가시지도 못하고,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 날씨에도 늘 뜨거웠던 비닐하우스 안은 항상 높은 온도로 숨을 막히게 하였지요. 오이를 심고, 옮기고, 따서 서울에 배송을 하고, 지금도 아련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늘 일 속에서만 사셔야 했던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 흰머리와 주름이 깊게 잡히신 아버지 모습 (사진제공: 장정애)
이제 자식들이 다 장성하여 자기 앞가림을 다하고 있는데도, 힘들다는 농사일은 그만두시라고 그렇게 애원을 하여도 아버지는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봄이면 고사리 뜯어서 보내 주시고, 여름이면 매실 나무 가득 열린 매실을 따서 보내 주시고, 가을이면 단감, 대봉감 등 따서 보내주시고, 1년 내내 우리를 풍족하게 해주십니다.

다행히 아직 연세에 비해서 정정하시긴 하지만 노인 분은 밤새 안녕이라고 언제 어떻게 되실지 몰라 항상 노심초사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지만 더욱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힘든 농사일 접고, 도시로 오시라고 해도 고향집이 편하고 좋다며 한사코 거절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특히 요즘처럼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시골에서의 생활이 녹록치 않음을 알기에 더욱 마음은 안타깝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실 겁니다. 당신께서 키워내신 7남매가 도시로 나가서 각자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당신께서 뒷바라지를 하여 일구어내신 자부심이라고 말입니다. 그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저는 오늘도 힘찬 미래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행복하고, 편안한 하루하루가 되시기를 자식으로서 간절히 기원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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