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 (사진출처: 연합뉴스)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

군복무 중 처음 들은 북한의 아리랑
‘누가 어디서 불러도 뭉클한 이 노래’ 
33년간 전국 다니며 채집·연구에 몰두 
“아리랑이 밥먹여주나” 소리도 견뎠다

2005년 유네스코 등재 요구 묵살당해
“중국에 등떠밀려 등재 신청한 모양새…
‘한반도’의 아리랑인데 왜 한국만 신청했나
아리랑, 방치대신 관심가지는 계기 삼아야

[천지일보=이솜 기자] “아리랑이 인류무형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돼 온 나라가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북한과 함께 등재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5월, 중국이 아리랑을 자국 문화유산 목록에 올리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제2의 독도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정부는 세계유네스코에 ‘세계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를 신청, 지난 6일 등재가 됐다.

이에 언론과 국민은 이 같은 소식을 알리고 축하를 하는 등 자축의 분위기가 뜨겁다. 그러나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58) 상임이사의 표정은 뜻밖에 어두웠다.

김 이사는 “따지고 보면 중국에 등 떠밀려 신청한 것”이라며 “이제 우리는 아리랑에 대한 인류문화유산적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 이것에 대한 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지, 자축할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중국이 자국 문화유산으로 올리기 6년 전인 2005년부터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등재시키자고 주장한 바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다가 1975년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 중 대남선전용 확성기로 북한의 아리랑을 처음 들었다. ‘어디에서 들어도, 누가 불러도 이 노래는 한국인의 마음을 어떻게 뭉클하게 만드는가’라는 생각에 제대 후 1979년부터 김 이사는 본격적으로 ‘아리랑 사랑’을 시작했다.

‘아리랑이 밥 먹여주나.’ 90년대 중반까지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아리랑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신혼여행에 가서는 아내를 길가에 세워둔 채 고서점에서 몇 시간 동안 연구할 정도였다. 그는 “내가 특별히 애국심이 뛰어나거나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며 “좋아하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회상했다.

80년대부터는 전국을 돌며 아리랑을 채집했다. 최소 면 단위까지는 한 군데도 빠짐없이 답사했다. 지역마다 ‘아리랑’ 민요는 달랐다. 김 이사는 “상대의 문화를 인정해줘야 자신들의 문화 역시 빛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랬다. 진도든 밀양이든 함께 부른다. 하나이면서 여러 개고, 다르면서 결국 같은 아리랑의 속성은 외국인들에겐 혼란과 동시에 엄청난 가치를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이후 33년간 아리랑 외길 인생을 걸으며 12권의 책을 내고 수십 개의 채록 음반에 수백 가지 희귀자료를 찾아내는 등 발품을 판 결과들이 속속히 나타나고 있다.

그는 아리랑만 연구하는 게 아니다. 김 이사는 “아리랑은 우리나라 국민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역사를 모두 함축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내용들을 모른 채 아리랑만 최고라고 하는 것은 독선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해서 연구를 해도 결국엔 아리랑에 도달하게 된다는 김 이사는 마치 자신의 자녀 얘기를 하는 아버지처럼 아리랑에 대한 자랑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아리랑에 대해 슬픔·기쁨을 모두 받아주는 수렴체, 극복 의지를 돋궈주는 추동체, 일제시대, 80년대 노동현장, 월드컵 등 감정의 극점에서 표현되는 발현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그는 아리랑이 저항, 대동, 상생의 정신을 가지고 있어 통일과 관련이 깊다고 덧붙인다. 1953년 휴전회담 조인식 직후 북한과 유엔군이 동시에 아리랑을 연주했으며 1989년 3월 판문점에서 남북이 아리랑을 단일팀 단가로 하기로 합의한 것과 2002년 월드컵 등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김 이사는 “나는 아리랑을 민요처럼 음악적 차원이 아니라 민족 문제 관점으로 본다”며 “통일가로 아리랑만큼 적합한 게 없다. 노래 하나를 남북 모든 사람과 재외 동포까지 익히려면 30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통일 비용을 절감해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유네스코 등재를 북한과 함께하지 않는 점이 그에겐 더없이 아쉬울 뿐이다.
김 이사는 “세계 어느 국가도 민족의 노래를 꼽기 어렵다. 우리는 비록 남북 분단이 됐지만 재외 동포까지 누구 하나 아리랑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전에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한국말을 다 잊었지만 아리랑 노래는 기억했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아리랑만 흥얼거렸는데 이를 들은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동일한 감성을 가지고 부르는 이 노래를 남북이 함께 신청하지 않은 것은 너무 슬픈 일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욕심이 많을수록 안타까움도 컸다. 그는 또 ‘아리랑 문화’가 아닌 ‘민요 아리랑’이 등재된 것을 아쉬워했다.

김 이사는 “가수 SG워너비의 아리랑은 ‘아리랑’이 아닌가? 고은의 시 아리랑도, 지구관측위성 아리랑 1호도 ‘아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라며 “가장 한국다운 것, 최초의 것, 자랑할 것에 아리랑을 붙이는 우리의 문화 전체를 등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가정을 돌보고 싶다는 김 이사는 앞으로 5년간은 자신의 생각을 계승하고 함께할 사람을 찾을 예정이다.

“유네스코에 등재됐다는 점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이를 활용할 것인가입니다. 누가 대신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하죠. 아리랑을 방치하면 지난해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언제 위험한 상황이 올지 모릅니다. 지금껏 시달린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금씩 더 관심을 두고 세계에 알리려 노력한다면 어떤 나라도 아리랑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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