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ㆍ강산에ㆍ故 김광석 등과 어울리다 퓨전과 인연
시대에 맞는 음악 만들어야… 자기 색깔 죽어서도 안돼

[천지일보=박혜옥 기자] 계곡 물소리가 주변 바위와 나무, 하늘뿐만 아니라 새의 지저귐과 잘 어우러지면서 그 투명한 물소리가 더 부각돼 귀와 마음을 청아하게 한다. 이처럼 대금 역시 여러 악기와 어울리면서 대금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우리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더군다나 서양 악기와 함께할 때 대금의 소리는 더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대금의 매력을 익히 알고 이를 알리기 위해 힘쓰고 있는 국악계에서 내로라하는 신진 퓨전 대금 연주자인 한충은 씨를 만났다.

KBS 국악관현악단 부수석으로 활동 중인 한충은 씨는 여느 때보다 바쁜 연말을 보내고 있다. 2집 앨범 ‘The forest’에 수록될 곡을 중심으로 16일에 있을 일곱 번째 콘서트 준비에 한창이었다.

2집 앨범은 그에게 특별했다. 한충은 씨는 중학교 시절 라디오에서 듣게 된 대금 소리에 반해 지금까지 전통음악에 대한 열정을 넘어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국악인의 길을 걸으면서 퓨전음악도 연주해왔고 또 그 과정에서 우리 음악, 내 소리에 대한 정체성을 찾으면서 얻은 결과물을 2집 앨범에 엑기스로 뽑아놓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와 관련, 한충은 씨는 몇 년 전 찰스 로이드라는 재즈의 거장과의 만남을 들려줬다.
한충은 씨의 대금 연주 소리를 들은 그는 감탄을 했고 같이 연주하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국악기를 가지고 재즈 연주를 했는데 그에게 들은 말은 “네 음악이 좋은 데 왜 너랑 안 어울리는 음악을 하느냐”였다.

이 말에 충격과 함께 깨달음을 받은 한충은 씨는 그때서부터 국악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내 소리, 우리 악기 중에 좋은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4~5년 찾아서 만든 것이 이번 음반이라고 전했다.

그가 이번에 선보이는 힐링 콘서트 ‘겨울 숲의 이야기(Story of the Winter Forest)’에는 특별게스트로 가수 이정, 2012 대학가요제 금상수상자 최민지, 한국 살사 챔피언 떼레&제이오 등이 참석한다고 한다.

그에게 퓨전 국악과의 인연에 대해 물어봤다.
“어린 시절 홍대 뮤지션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은미·강산에·故 김광석 등이에요. 함께 어울리다가 어느 순간에 대금과 피아노, 재즈가 만났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고 좋은 평을 많이 받았어요.”

또한 국악 특히 대금에 대한 그의 열정은 활동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는 힘이 됐다. 그는 자신의 창작 및 활동뿐만 아니라 창작국악단 ‘슬기둥’, 퓨전 록그룹 ‘유라시아의 아침’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유감없이 펼쳤다. 또 매년 본인이 직접 기획한 ‘금성신화 콘서트’ 시리즈는 퓨전국악의 진수를 보여주며 인기 있는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감성을 자극하는 뛰어난 대금 연주 실력으로 김기덕 감독의 데뷔작 ‘악어’의 메인 타이틀곡 연주를 비롯해 ‘미인도’ ‘최종병기 활’ ‘천년학’ ‘아름다운 시절’ 등의 영화음악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그가 참여한 ‘천년학’과 ‘아름다운 시절’ 등은 대종상영화제에서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다.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 ‘최강칠우’ 등의 인기 드라마 음악에도 참여했으며, 박정현, 안치환, 전인권 등 대중가수들의 음반 제작도 함께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을 방문한 세계적인 뮤지션 ‘바비 맥퍼린’ ‘잉거마리’ ‘양방언’ ‘리얼그룹’ ‘에디투스’ ‘로스웰 러드’ 등과도 협연하는 등 국악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이러한 그의 경력에 그가 대금 신동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어봤다.
“소질을 커버하는 것이 즐거움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내가 잘 한다는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잘 못하더라도 행복하니 계속 매달리게 되고 이러다보니 계속 발전하고 연습하고 싶어졌어요. 하다보니깐 어느 순간에 같이 시작한 사람들보다 더 발전하게 됐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그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요. 잘하는데 각자의 분야가 있어요. 정악을 잘하는 사람이 있고 민속악을 잘하는 사람이 있듯이 각자 잘하는 부분들을 다들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과연 그중 제일 잘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어느 하나 밀리고 싶지 않다’라는 욕심은 연주자들이 항상 다 가지고 있어요. 그런 부분들의 욕심이 힘들죠. 어느 정도는 내려놓을 필요가 있어요.”

또한 그는 국악기와 서양 악기가 안 맞는 게 많다며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고집을 피워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또 자기 색깔을 죽여서도 안 된다고 전했다. 이에 예민해져야 하고 서로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충은 씨는 국악계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TV나 라디오를 통해 접하는 국악은 전달력이 굉장히 떨어져서 재미와 생동감이 없어요. 한국의 전통 음악은 생동감과 에너지가 있는 것인데…. 어떤 매체들의 음악에 대한 부분은 서양 음악이나 대중음악이 특화돼서 방송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쪽의 순수하고 자연적인 악기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데 무리가 있어요. 실제로 들으면 좋아할 수 있는데 그렇게 공연장에 오지 못한 것이 문제인 거지요.”

이어 그는 “젊은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못 갖는다고 하지만 실제로 많은 젊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국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열정을 쏟고 매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것은 경험의 문제예요”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일제 치하에서부터 우리 것이 소중하다고 말했지만 88올림픽 이전까지 사대주의가 엄청나게 강했어요. 한국이라는 나라가 반만년 유구한 역사라고 얘기하는데 막상 88올림픽이 생기면서 외국 사람들한테 보여줄 게 없는 거예요. 사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게 많았던 거예요. 그전에 교과서에서 국악에 대한 얘기는 거의 없었어요. 이것은 나라의 정체성이 없어진 심각한 문제죠”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 자국보다 돈도 군사력도 없는 프랑스나 다른 유럽 나라들을 굉장히 부러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들이 오랜 세월 쌓아온 문화”라며 “한국이란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이길 수 있는 경쟁력은 문화예요. 그런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돼요”라고 강조했다. 또한 “가수 싸이가 미국에 나가 문화 선두를 만들고 있어요. 대중 예술도 예술이죠. 하지만 대중 예술은 짧아요. 어떤 주기가 있는 거죠. 그래서 오래 갈 수 있는 어떤 무언가를 찾아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한충은 씨의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그는 “지금 제일 중요한 일은 KBS 악단에 소속돼 있어 악단에서의 활동으로 중요한 일들을 많이 해야 되지만 예술적인 열정이 있어서 개인 활동을 게을리 할 수 없어요. 그래서 2집 음반이 나왔지만 그 다음 음반도 준비해야 하고 지금까지 콘서트를 거의 매년 해왔지만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것”이라며 “국악의 좀 더 수수한 오리지널리티을 살리면서 서양 음악과 잘 어울릴 만한 그런 부분이 어떤 부분일까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두려고 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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