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웅전(大雄殿) 안에 있는 석가모니, 약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보물 제1274호)은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땀과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산과 어우러져 그림 같고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곳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 대웅전(大雄殿) 내 삼세불상에서 땀과 눈물이 흐르는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불상에서 흐른 땀과 눈물은 가슴을 타고 무릎 위에 흥건히 고였고 이 불상은 15일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땀과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다음 해 우리나라는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제위기가 닥쳤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 도산, 대량실업 발생, 명예퇴직 등 나라가 어려움에 부닥쳤다. 불상의 이 같은 이적은 나라의 어려움을 미리 알려줬던 것은 아닐까. 송광사 측은 서해 페리호 침몰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사건, 그리고 동해안 무장간첩 침투사건 등 나라에 큰일이 생기거나 어려움이 닥칠 때면 불상이 이 같은 이적을 보였다고 전했다.

◆1200여년의 역사 지닌 사찰
240㎞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천주교·원불교·기독교·불교 등이 대화와 소통을 위해 전주와 익산, 김제, 완주지역의 다양한 성지를 연결해 만든 길이다. 이 길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이자 2코스의 처음 지점인 송광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절로 조계종 금산사(金山寺)의 말사다.

송광사는 신라 진평왕 5년(583)에 도의선사가 절터를 찾다가 영천수를 발견하고 터를 잡았고 경문왕 7년(867)에 보조국사 체징(804~880)에 의해서 중창됐다. 이곳을 지나던 보조국사는 폐사돼 주춧돌만 가시덤불 속에 남아 있던 것을 성지임을 알아보고 표시를 해뒀다. 그는 순천 송광사를 개창한 후 제자들에게 완주 송광사를 복원·중창할 것을 부탁했고 수백 년이 지난 조선광해군 15년(1622)에 웅호‧숭명‧운정‧득신‧홍신 등 보조국사 제자들이 덕림스님을 중창주로 모시고 복원·중창했다.
 

▲ 송광사 일주문(一柱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호). ⓒ천지일보(뉴스천지)

◆세속의 생각을 버리는 일주문
경내로 들어가는 첫 관문은 일주문(一柱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호)이다. 이곳에는 ‘입차문래자 막존지해(入此門來者 莫存知解)’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일주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세속적인 생각과 분별하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진리를 생각해 불법(佛法)에 귀의해야 함을 뜻한다. 이 글은 서예계의 거목인 일중 김충현 선생이 쓴 것으로 장인만의 단정하고 장엄한 매력을 보여준다. 문의 좌우 측면에는 위아래 굵기의 변화가 없는 중심기둥이 있는데 특이하게도 기둥 앞뒤로 연꽃을 조각한 보조기둥이 있다. 또 처마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화려함을 더했다.

일주문(一柱門) 앞에 서서 보면 금강문(金剛門)과 천왕문(天王門),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배치돼 있어 차례로 보인다. 마치 일주문 자체가 하나의 액자가 되어 금강문과 천왕문, 대웅전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일주문을 지나 일직선으로 열댓 발자국 걸어 금강문에 도착했다. 유형문화재 173호인 금강문에는 금강저(불교 용구)를 가지고 부처님을 호위하는 밀적금강상과 코끼리의 백만 배가 되는 힘으로 불법을 수호한다는 나라연금강상이 있다.
 

▲ 완주 송광사 종루(鐘樓, 보물 제1244호). ⓒ천지일보(뉴스천지)

◆화려한 종루가 특징
길을 따라 계속 걸으니 사천왕상(보물 제1255호)이 있는 천왕문이 나왔다. 천왕문 입구에서 바라볼 때 우측 안쪽으로 비파를 든 북방다문천(北方多聞天), 그 옆 입구쪽으로 칼을 든 동방지국천(東方持國天), 좌측 안쪽으로 탑을 든 서방광목천(西方廣目天), 그 옆 입구 쪽으로 용과 여의주를 든 남방증장천(南方增長天)이 있다. 이 네 천왕은 모두 의자에 앉아 양발로 악귀를 제압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됐다. 그 밑에 큰얼굴을 올려다보니 더욱 위압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어진 길의 끝에는 대웅전이 보인다. 이 자리에서 대웅전과 옆 첨성각, 뒤에 있는 위봉산, 나무 한 그루가 합을 이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평소엔 대웅전 정문이 개방돼 있지 않기 때문에 대웅전 양옆에 있는 문을 통해 들어가자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 눈에 들어왔다. 석가모니, 역사여래, 아미타여래 불상(보물 제1274호)은 각각 부처의 삼세(전세‧현세‧내세)를 상징하는 삼세불이다.
 

▲ 대웅전과 옆 첨성각, 위봉산, 나무 한 그루가 합을 이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국내 최대 크기의 이 불상들은 모두 조선 인조 19년(1641)에 흙으로 만들어졌다. 불상 복장에서는 병자호란 때 중국 심양에 끌려간 두 왕세자의 무사 귀국을 비는 발원문이 나왔다. 또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땀과 눈물을 흘린다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로 유명세를 탔기도 했다.

완주 송광사 또 하나의 특징은 바로 종루(鐘樓, 보물 제1244호)다. 보통 종루나 종각은 사각형인 데 비해 십자형 지붕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또 이곳의 종루는 여느 사찰과 달리 무척 화려하다. 무거운 종을 품고 있는 이 종루는 누마루를 경계로 12개씩 누하주와 누상주를 세웠다. 그 위에 다포계 팔작지붕을 교차시켜 짜 올려 그 모습이 화려하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누마루의 중심을 이루는 4개의 기둥에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듯한 용이 조각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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