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최근의 어린이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TV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필자는 소아정신과 전문의로서 걱정이 많다. 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 준석이가 진료실로 찾아 왔다. TV를 너무 많이 봐서 눈이 나빠진 준석이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피곤해 보였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하루에 3시간 이상 TV를 본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TV 중독 상태에 이른 것이다. 준석이는 3개월간의 소아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고 나서야 겨우 TV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TV 중독 상태의 준석이는 책을 읽을 때는 잘 집중하지 못해서 다른 짓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TV를 볼 때는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심각한 문제다.

TV처럼 현란한 시‧청각적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준석이의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의 뇌는 눈을 통해서 각종 정보를 얻는다. 그렇게 얻어진 정보는 눈의 신경(시신경)을 따라서 뇌의 뒤쪽 부위인 후두엽으로 전달된다. 그런 다음에 이미지(형상) 자체는 뇌의 위쪽 부위인 두정엽으로 퍼지고, 이미지(형상)가 과연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뇌의 옆쪽 부위인 측두엽으로 퍼진다. 그런 다음에 시각적으로 얻은 정보를 통해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그 결과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주로 뇌의 앞쪽 부위인 전두엽에서 이루어진다. 한편, 귀를 통해서 얻는 소리의 정보는 진동의 형태로서 압력을 변화시키고, 이는 귀의 신경(청신경)을 따라서 측두엽으로 전달되어 듣게 된다. 그런 다음에 역시 전두엽에서 생각과 판단, 그리고 결정을 한 다음에 말을 하게 되는데, 말하는 영역은 전두엽 아래쪽에 있다.

책을 읽을 때와 TV를 볼 때의 우리 뇌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글자를 눈으로 본다. 글자를 읽으면서 그 뜻을 알게 된다. 결국 시신경, 후두엽, 두정엽, 측두엽 등이 모두 활성화된 다음에 전두엽에서 각종 판단을 한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읽었다면, ‘아, 이 책의 내용은 바로 이것이로구나. 나도 책에서 읽은 것처럼 아인슈타인을 본받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적의 아인슈타인은 지금의 나와 비교해서 어떻게 비슷하거나 또는 어떻게 달랐을까?’ 재미있는 상상도 하게 된다. ‘내가 커서 아인슈타인처럼 머리가 희어지고 수염이 나면 훌륭한 과학자가 될까?’ ‘훌륭한 과학자가 되어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연구를 하면 우리 부모님이 나를 자랑스러워하겠지? 친구들과 선생님은 놀라서 입을 벌릴지도 몰라.’ 등을 상상한다. 이와 같이 책을 읽는 것은 단지 글자를 보는 것 외에 아이의 생각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TV를 볼 때는 자막에서 비춰지는 움직이는 영상과 그에 덧붙여 있는 소리를 보고 듣게 된다. 책을 읽을 때는 내가 능동적으로 노력해서 읽는 것이지만, TV를 시청할 때는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보고 듣는 것이다. 그 결과 TV에서 나오는 그림과 소리는 나의 시신경과 청신경을 통해서 후두엽, 측두엽, 두정엽을 활성화시킨다. 그러나 정작 올바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 중요한 전두엽을 활성화시키는 것은 매우 적다. 기껏해야 TV에서 나오는 끔찍한 장면을 보고서 ‘저것은 나쁜 짓이야.’ 등의 판단을 하거나 또는 나도 모르게 ‘와! 재미있다.’라는 탄성이 나올 때 전두엽의 활성이 이루어진다. 결국 인간의 고위 기능인 합리적 판단, 추상적 사고, 충동의 조절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발달시키는 것에 있어서 TV 시청은 역부족이다.
아이가 TV 시청을 할 때 각종 상상을 하기보다는 TV에서 나오는 장면과 소리를 쫓아가기도 바쁠 것이다.

TV가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다. TV가 위험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지나친 재미’다. 아이가 TV 시청에 빠져들어 세상의 모든 걱정을 다 잊어버린 것 같은 즐거움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아이의 뇌에서 마치 마약을 복용했을 때와 같은 흥분상태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와 같은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면 TV 중독에 이르게 된다. 이제부터 아이가 흥미를 갖고 재미를 느낄 만한 내용의 책을 선택해서 읽게끔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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