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최근 대입 수능 성적표가 배포되었다. 해마다 입시철이 반복되지만 이맘때가 되면 최고의 화제는 단연 입시 관련 뉴스다. 언론에서도 이날 학교 현장의 모습을 르포 형식으로 전달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신문에는 울고 있는 친구를 위로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올해는 수능이 쉽게 출제되었다는 당국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더 어렵게 나와 입시 전략을 짜는 데 애를 먹을 것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수험생들과 교사, 학부모들은 난수표처럼 복잡한 입시요강을 놓고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입시 설명회마다 뭐다 해서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그렇게 입시가 완료되면 누구는 자랑스러운 대학생이 되고 또 누군가는 쓸쓸하게 다음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학교마다 동네마다 현수막이 걸릴 것이다. 어느 대학에 몇 명이 진학했으며 아무개는 어느 대학 수석으로 입학했다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는 것이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입시 결과를 자랑하는 현수막이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과 그 부모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처사라며 걸지 못하도록 공문을 내려 보내기도 했지만, 현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유명 입시 학원이 몰려 있는 동네에서도 현수막이 마구 내걸릴 것이다. 심지어 다니지도 않은 학생의 이름을 내걸어 홍보에 이용하는가 하면, SKY라는 기묘한 단어를 만들어 이번에 몇 명을 SKY에 합격시켰다느니 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보나마나, 들으나마나 한 뉴스가 또 등장할 것이다. 어느 지역 출신 학생들이 서울대에 가장 많이 들어갔으며 어느 지역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높게 나왔다는 기사가 뜨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개천에서 용 나오기가 갈수록 어려운 세상이라며 혀를 찰 것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한 것이라면 당연히 축하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입시철이 되고 그때마다 사람들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입시라는 그 게임이 왠지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사람이 유리한 입장에 서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교육이라는 게 가난한 사람이 부자 되고 부자가 더 부자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EBS TV ‘교육 대기획 10부작-학교의 고백’ 9편 ‘잘난 아이들’에는 부천실업고 학생들 이야기가 나왔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낮에는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고 밤에 나와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진솔한 모습을 내보낸 것이다. 한창 놀고 싶고 부모의 보살핌도 필요한 나이지만 스스로 밥벌이를 해결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 무엇보다 야간 학교 학생이라고 얕잡아 보는 세상의 편견이 어린 아이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쇳가루를 마시며 죽도록 일해 봤자 한 달에 겨우 십 만 원 남짓 받으며 주경야독하는 어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더러운 것 같다.” 서울대 다니는 사람들이나 알아주고 우리 같이 야간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우습게보고 막 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눈물 나는 소리다. 서울대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서울대 나오지 않았다고 비웃는 세상이다. 그 아이는, 세상이 더럽다는 걸 개그콘서트에서 배운 게 아니다. 삶의 현장이 그에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걸 가르쳤다.

어느 대통령 후보는 학원에서 선행학습 못 시키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기특하다. 문제는 선행학습이 아니다. 어린 청춘이, 세상이 더럽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 어린 청춘의 눈물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만세를 부르고 나면, 그들은 그 어린 청춘의 눈물을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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