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칼럼니스트

 
후보들의 공식 등록으로 대선전이 본격적으로 막이 올랐다. 많은 후보들이 등록을 마쳤다. 이것으로 안개 속이던 선거판은 적어도 누구누구가 나올지는 분명해졌다. 그렇지만 안철수 후보의 돌연한 사퇴로 부동층이 급증한 상황이어서 당락의 전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후보들은 많지만 선거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간의 양강 구도로 치러질 것이 확실하다. 이 둘 중 누가 될 것인가는 이 갈 곳 몰라 하는 부동표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렸다.

안철수 후보는 매끄럽지 못했던 단일화 과정에서 모멸감과 환멸감을 느낀 것 같다. 그는 후보 사퇴를 발표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문재인 후보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었다. 그의 사퇴는 벼랑 끝에 몰린 나머지 이루어진 자포자기적인 선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기싸움에서 졌다. 정치판이 매몰차고 무자비한 곳이라는 것을 그는 미처 몰랐던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인물로서는 너무 유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출마 결심을 밝히면서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며 정치판에 뛰어든 결기를 밝혔었다. 그 말을 떠올린다면 그의 퇴장은 몹시 허망하다. 그러려면 무엇하러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았나. 만약 그 말이 그의 마음속에서 아직도 유효하게 작용한다면 그는 언제 다시 정치판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일단 떠난 것은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잠시 머물렀지만 그가 정치판에 남긴 청산을 기다리는 자산과 부채는 적지 않다. 자산이라면 무엇보다 그가 부르짖은 정치 쇄신이 그가 불신하던 정당들을 대오각성(大悟覺醒)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 진정성이야 집권을 해봐야 알 노릇이지만 적어도 정치쇄신의 의제(Agenda) 쟁탈 경쟁만이라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치열하게 전개 중이지 않은가. 두 정당은 후보직에서 사라진 안철수 후보를 팔아가면서 서로 정치쇄신의 독보적인 주역이 될 것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니까 안철수 후보가 남긴 자산을 뜯어가려는 경쟁이지만  정치 서비스의 수혜자인 국민의 입장에서는 결코 나쁠 것이 없다. 이는 분명히 안철수 후보가 남긴 긍정적인 기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 뿐인가. 두 당의 ‘자산’ 쟁탈전은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데 집중되고 있다. 이는 탐나는 남의 떡이자 견물생심(見物生心)의 현찰과 같다. 국민의 불신이 깊은 정당들의 정치쇄신 구호는 약발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나 이 붕 떠있는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는 것은 그야말로 당락과 직결된다. 그렇기에 안철수 후보에게 그렇게 이지매를 가하던 새누리당도, 그와 단일화를 꾀하다 좌절된 민주통합당도 안철수 후보의 아픈 심사를 건드리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다. 사실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 중 부동층으로 남은 표를 빼고는 상당한 숫자의 표가 두 당에 나뉘어 간 것으로 짐작된다. 관건은 아직도 정처 없이 떠도는 그 부동표다. 그 부동표를 향한 민주통합당의 안철수 후보에 대한 구애는 적잖게 후안무치하다. 눈물나게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무슨 염치로 어른단 말인가.

안철수 후보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괘씸하지 않을까. 야권 후보 단일화는 그가 민주통합당이 갈망하는 정권교체의 프레임에 갇혀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괘씸하더라도 정권교체의 꿈을 안고 문재인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그의 정치 생명을 이어갈 계산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행여 단일화 작업에 매달릴 일이 아니라 차라리 정치쇄신이라는 시대정신에 충실해 당락을 떠나 국민만을 보고 출마를 결행했어야 하는 일이었다고 후회하고 있을까. 이것이나 저것이나, 국민이 그의 중도 사퇴를 보고 소회가 복잡했지만 그의 지금 속마음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할 것이 틀림없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에게 진 빚이 없다고 감히 말했었다. 하지만 그는 중도에 그만둠으로써 국민에게 많은 빚을 졌다. 국민에게 진 빚이라는 것은 그가 사퇴함으로써 지지자들이 가졌을 실망이며 배신감이다. 그렇다면 그 말은 지나치게 자신만만했다. 뿐만 아니라 좀 빨랐다.

어떻든 선거날이 손가락으로 꼽으면 채 한 달도 안 남았지만 그 기간은 짧지만 결코 짧지 않다. 후보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공약들이라는 것은 미세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동소이 해 어느 후보도 안심할 수 있을 만큼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는 양강의 후보들이 펼치는 필사의 노력으로 초접전 양상을 띨 것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선거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는 하지만 엎치락뒤치락 불확실성의 국면이 끝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어느 후보든 어느 날 상황이 좀 유리해졌다고 희희낙락하거나 방심하면 이기기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이 같은 판세에서는 공약이 썩 잘 먹히지 않을 것이므로 네거티브가 동원되기가 쉽다. 예컨대 후보들 모두가 미래를 국민에게 말하면서도 선거 방식과 전략에 있어서는 과거를 들먹이고 이념과 지역을 들먹이며 세대와 계층의 갈등을 부추겨 이용하는 퇴행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근거 없는 흑색선전이나 음해, 인신공격도 고질적인 네거티브에 속하는 부류다. 이번 선거가 특히나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후보들마다의 특징적인 정책 이슈가 없으므로 그 같은 네거티브에 기대어 캠페인이 벌어질 개연성이 농후하다. 더구나 이 같은 네거티브는 매체들이 선정적으로 다루기 마련이어서 한 방에 상대 후보에게 치명상을 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후보들은 부메랑과 같은 역풍을 맞을 위험을 무릅쓰고 네거티브를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국민은 선거 때마다 춤추는 네거티브에 중독이 된 상태다. 국민이 이처럼 네거티브에 중독이 돼있으므로 자꾸만 더 독한 네거티브의 소재를 후보들은 찾게 된다. 덩달아 선거판은 갈수록 혼탁해지며 까닥 잘못하면 이번 선거판이 유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험한 네거티브의 잔치판이 될 수가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네거티브가 일시 효험은 있을지라도 그 속에서는 악의는 뚜렷하게 보이지만 선한 진정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네거티브를 하고 말고는 후보들 마음일 것이로되 궁극적으로는 표를 얻기 위한 네거티브보다는 갈급한 민생대책이나 국민복지, 동서통합이나 국민행복과 같은 진정성 있는 정책이 표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바로미터가 되기 쉽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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