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1일 전북 정읍시 내장산동 내장사에 불이 나 대웅전이 잿더미로 변했다. (연합)
해마다 되풀이되는 전통사찰 화재 막을 길 없나

[천지일보=장요한 기자] 지난달 전북 정읍 내장사 대웅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번 화재로 조계종에서 근대문화유산등재를 추진 중이던 대웅전을 비롯해 편액, 석가여래좌상, 연상회상도 등 우리 문화유산이 모두 불탔다.

지난해에는 강원도 춘천 보광사 법당이 화재로 전소됐고, 2010년에는 부산 범어사 천왕문이 방화로 탔다. 이처럼 전통사찰들은 화재에 취약하다. 특히 전통사찰 특성상 목조 건축물이여서 큰불이 나면 속수무책이다. 이 때문에 피해 규모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방방재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 ‘화재통계 연감(연도별 종합)’에 따르면 1998~2011년까지 14년간 발생한 사찰화재는 모두 676건이다. 한 해 평균 48.3건이 일어난 것이다. 피해액도 108억 7800만 원 정도로 한 해 평균 7억 7700만 원에 달했다.

이 같은 화재의 원인으로 전기가 40.4%(272건)를 차지해 가장 높았으며, 방화도 6.0%(43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런 사찰화재가 매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목조 특성상 화재 나면 진화 어려워
사찰화재에 대한 정부나 불교계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되풀이되고 있는 사찰화재에 대한 대책은 더디기만 하다. 현재 불교계의 방재사업은 국보 등 국가지정 문화재는 문화재청이 담당하고 있으며, 이밖에 전통사찰은 조계종 문화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관여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산불로 한순간에 잿더미가 된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화재 이후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사찰 중요목조문화재 150곳에 방재시설 설치를 끝냈다. 이런 가운데서도 사찰화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초 발생한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방화사건에 대해 문화재청 관계자는 “(화엄사는) 방재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다”면서 “다만 CCTV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불빛이 없었기 때문에 식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방염 처리와 초동 진화로 문이 그을리는 데 그쳤지만 화재감지기는 오작동으로 꺼놓은 상태였다. 범인을 식별하기 위해 설치한 CCTV도 활용되지 못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화재 발생한 날 현장 조사를 통해 조명등을 설치했다”면서 “한 달에 한 번씩 점검하는 등 사후관리에도 신경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방재시설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시설 노후나 오작동 점검 및 사후관리도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 지난달 5일 전남 구례 화엄사 각황전에서 방화로 문 일부가 그을렸으나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연합)
방재시스템 구축 기간 10년 ‘더뎌’
전통사찰의 경우 방재 시스템은 더 미진한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계종 문화부와 문광부도 전통사찰 방재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사업은 올해부터 향후 10년간 938개 전통사찰을 대상으로 2500억 원이 소요된다. 전기차단기나 불꽃·연기감지기, CCTV 등 목조 문화재에 맞는 설비를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진행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조계종 문화재팀 박상준 팀장은 “내부적으로도 사업의 진행 속도를 앞당겨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는 있지만 문광부와 협의를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또 “개별 건축물에서만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문화재로 불이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전국 사찰에도 이 시스템을 구축해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추진하는 사업은 ‘방재 예측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전통사찰 중 방재시설이 설치돼 있기는 하나 대부분 화재가 났을 때 진화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목조 건축물은 화재 시 사실상 진화가 어렵다. 대부분 목조로 이뤄진 데다 외진 곳에 있어 소방차 출동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방향에 맞도록 방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사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른 문화재 관련 사업에서처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종단이 직접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방재 시스템 운영지침이나 업체 선정 과정, 전문성 등이 투명하고 검증돼야 한다”면서 “이런 사업은 국가나 지자체에서 맡아서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방재시설뿐 아니라 관리자의 안전의식이나 대응 훈련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황 소장은 “화재가 나면 방재 시스템만 문제 삼는데 이번 내장사 화재 경우는 인재였다”면서 “문화재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사찰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며, 화재 대응 훈련이 잘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교와정책연구소 법응스님은 사찰의 주된 화재 원인인 전기사용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법응스님은 “화재 원인이 될 만한 인적·물적 대상을 배척해야 한다”면서 “국가지정 문화재를 비롯해 전통사찰 목조 법당의 전기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부득이하게 사용하게 된다면 퇴방 시 스위치가 아니라 차단기를 아예 내려야 한다”며 내부 관리자의 의식 개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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