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특히 성폭력범 등 범죄를 저지른 후 가해자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술에 취해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정신이 혼미해서 사물을 변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등 자신의 범죄 행위를 심신장애로 몰고 가 형량을 적게 받으려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취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만취’가 핑계거리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최근 술에 취해 사물을 변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며 심신장애를 주장한 성폭력범에 대해 대법원이 잇따라 실형을 확정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오피스텔과 고시원 등에 침입해 자고 있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주거침입강간)로 기소된 곽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7년에 정보공개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또한 누범 기간에 길을 지나가던 여성을 또 성폭행하려다 기소(강간치상)된 이모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5년에 정보공개 10년, 위치추적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명령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두 사건과 같은 경우도 가해자들이 모두 심신장애를 주장하며 감형을 받으려 했다. 비단 이 두 사건만이 아니다. 자신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해 피해 여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평소 생각이 바르고 행동이 바른 사람이라면 아무리 술에 취했다 하더라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못할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를 단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기까지는 사법부의 잘못이 아예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더 이상 성범죄 등 흉악한 범죄에 대해 ‘술에 취한 상태’ ‘심신장애’라는 선처는 있을 수 없다. 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죄를 짓고도 ‘술에 취했다고 하면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정확한 판단과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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