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분당소방서 구미119 안전센터 사회복무요원

작년 가을 아일랜드를 여행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6시쯤 더블린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받고 버스에 올라 시내로 향하던 길이었다. 러시아워라 도로엔 차가 무척 많았고 내가 탄 버스 또한 거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답답한 상황이 반복되던 중 뒤쪽 어디선가 구급차와 소방차 여러 대로 짐작되는 사이렌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난 그저 ‘무슨 사고라도 난 건가?’ 이런 생각을 잠깐 했을 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이렌 소리를 들은 운전기사는 도로 가장자리로 버스를 이동하더니, 차량 내 방송을 통해 “뒤에 오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먼저 지나갈 수 있도록 우리 차는 잠시 정차하겠습니다.”라며 안내를 했다. 난 이 방송을 들으며 잠시 어색한 내 기분에 놀라고 버스 기사의 자연스러움에 한 번 더 놀랐다. 또한, 20분가량 정차해있었던 상황임에도 승객 중 누구 하나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던 시민 의식에도 감탄했다.

소방서에서 구급차를 타고 출동한 지도 어느새 1년이 다 되어간다. 구급차를 타고 곳곳을 다녀본 바 우리나라에선 아직 아일랜드와 같은 ‘모세의 기적’은 보이질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모든 구급 활동이 응급 상황인 건 아니기에 항상 양보가 필요한 건 아니다. 위급 상황의 경우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해야 하기에 사이렌을 켜고 앞서 달리는 차들이 양보해줄 거라는 믿음 하나로 오늘도 소방 구급대원은 위험한 곡예운전을 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부터 긴급 차량에 대한 양보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면서 양보하지 않는 차량에 대해 2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물론 강제성을 띤 법안을 통해 소방차 길 터주기의 빠른 정착화라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무슨 일이든 강제성을 띠면 한계가 있기 마련, 우리나라에서도 선진국과 같은 도로 위 ‘모세의 기적’을 보기 위해선 강제성을 앞세운 변화보단 우리 스스로 생각의 변화를 꾀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법안이라도 그 법안의 주체인 우리 즉, 내가 먼저 변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외국사례를 부러워만 하는 국민에서 벗어나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 하나만이라도’ 실천하여 다가오는 겨울철 우리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도로 위 수호천사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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