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유한 문화 가운데는 선비문화가 있다. 그러나 이 선비문화는 지금까지 많은 오해와 함께 왜곡되어 왔고 폄훼(貶毁)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물론 그러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한민족(韓民族)의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와 함께 내려오는 문화의 원동력인 ‘정신세계’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계략이 한 몫을 했고, 또 그 궤계(詭計)에 말려든 동조세력(친일)이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선비는 빈둥빈둥 놀면서 글이나 읽고 세상일은 하지 않는 백면서생(白面書生)을 일컫는 말로 전락돼 왔다.

그러나 먼저는 “가난하고 비천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정작 부끄러운 것은 도를 익히고도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신라 최고의 문장가 강수 선생은 선비에 대한 정의를 내리면서 ‘실천하는 선비의 상’을 강조했다. 그러한 선비의 상은 길고 긴 역사와 함께 모델이 돼 내려왔으며, 시대마다 선비들은 그 시대를 지배하던 학문을 통해 생각과 의식을 이끌며 새로운 가치세계를 창조해 왔던 것이다.

이쯤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흔히들 오늘날을 ‘서기동래’의 시대라 말하고 있다. 즉, 서쪽의 기운이 동쪽으로 오는 시대를 맞이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다시 말해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해 온 것이 서구의 힘과 물질문명에 의해서라 할 것 같으면, 새 시대는 정신과 그 정신을 지배하는 참 종교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화의 시대 곧 정신문명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종교지도자 33인(기독교 16, 천도교 15, 불교 2)은 독립선언서를 통해 도래할 새 시대를 이르기를 “위력(威力)의 시대는 가고 도의(道義)의 시대가 도래하도다. 아! 신천지(新天地) 시대가 안전(眼前)에 전개하도다”라고 오늘날을 미리 예언하기도 했으니, 도래할 미래의 새 시대는 도(道) 즉, 말씀과 함께하는 종교의 시대 곧 정신문명의 시대를 미리 알린 것이다.

이는 결국 종교가 말하는 하늘같이 높디높은 문화를 의미하니 바로 ‘하늘의 문화’인 것임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이 하늘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임을 미리 알려온 것이다.

서기동래라 하듯이 이처럼 높은 사상을 전개해 나갈 민족이 바로 동방의 작은 나라임도 짐작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까지 이어온 역사와 문화는 높은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그 정신은 바로 시대 시대를 이끌어온 선비 또는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바로 이 선비정신이 있었기에 서기동래의 기운을 받아 새 시대를 일궈 갈 수 있음도 깨닫게 한다.

특히 살아있는 선비 가운데서는 중봉 조헌이 있고, 남명 조식이 있다. 조선시대 4대 사화 등 가장 혼란한 시대를 살았으면서도 그 혼란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켜 민족의 정신을 되살리고, 학문을 통한 예지력으로 내일을 염려하고 준비했던 지금도 살아있는 위대한 선비요 선각자다. 이 분들이야말로 강수 선생이 미리 말한 선비의 표상인 실천하는 선비였다.

이들은 당시 지배학문인 조선 성리학을 기본으로 학문을 익히면서도 모든 만물의 이치를 깨닫기를 노력했으며, 나아가 다방면의 학문을 두루 섭렵함으로써 성리학을 낳은 유교뿐만 아니라 유불선 모든 종교가 하나임을 깨달은 시대의 철학자요 성인이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비가 있으니 바로 동시대를 살았던 격암(格菴) 남사고 선생이다. 격암 선생은 위의 두 선비와는 다르게 그다지 많은 학문을 익힌 유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학문적 깊이와 그 깨달음의 결과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되리라 여겨진다.

그는 경북 울진의 한 시골에서 태어났으며, 조정에 나가 있는 부친과 유학자의 기품이 있는 가문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는 소학을 탐독할 정도로 독학을 했으나 점점 자라면서 배울 스승도, 유학을 함께 나눌 벗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자연스레 경전보다는 빼어난 자연환경 덕분으로 자연의 현상과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생로병사와 흥망성쇠에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모든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그의 자연현상에 대한 궁리심과 연구심은 점점 깊어 갔고, 그러던 중 당시 강원도 관찰사였으며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는 시조와 청백리로 우리에게 익숙한 봉래 양사언(梁士彦)으로부터 자동선생(紫同先生)이란 칭호를 얻을 정도로 그의 철학은 깊어만 갔다. 결국 그는 유학보다도 천기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예지력을 갖게 되었으니, 이는 거저 된 게 아니라 격물치지(格物致知, 유교 대학의 8조목 중 가장 철학적 내용)라 하듯 모든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하는 끈질긴 그의 궁리심에 하늘이 탐복해 내린 지혜요 총명의 산물이었다.

그는 선조의 등극에서 임진왜란에 이르기까지 국가 대소사에 대한 수많은 예언을 했고, 그 예언은 때가 되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갈 것은 그는 분명 유학에 근본을 둔 유학자였으나, 유학에 한계를 두지 않았고 모든 학문과 자연의 이치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었으며 미래를 예측해 왔던 것이다.

결국 그가 남긴 마지막 예언이 하나 있으니 종교의 말세와 함께 피할 곳을 알리고 있다. 그 곳은 십승지(十勝地) 곧 구원의 처소다. 이 십승지는 궁을도가에서 ‘비산비야(非山非野,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니다)’라 했으니 이 땅의 어느 특정지역을 말하고 있음이 아님을 알 수 있다(“말세골염 유불선 무도문장 무용야, 천택지인 삼풍지곡 식자영생 화우로”). 즉, 하늘의 뜻을 받은 한 사람 또는 그 사람이 있는 곳을 가르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이는 옛 것에 근본을 두고 새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게 되는 사자성어다. 또 이처럼 오늘날의 무한한 정신세계를 열어주는 선현들의 깨달음을 통한 가르침 즉, 선현들의 혜안(慧眼)을 본받고 궁리심과 연구심을 본받아 정신문명이 지배하는 도래할 새 시대를 선구자적 자세로 맞이하고 이끌어가야만 하겠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